ECB, 말 안 듣는 伊·그리스 지원하자니 속이 타네

머니투데이 권성희 기자 2011.09.05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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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중앙은행(ECB)이 이탈리아와 그리스에 긴축조치의 성실한 이행을 촉구하는 한편 유로존 경제 전망이 악화되는 가운데 금리 전략을 재평가해야 하는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5일 ECB가 유럽 금융위기의 가장 위험한 국면에서 그리스는 물론 이탈리아 국채까지 직접 사들이며 위기를 막는 방어벽 역할을 해왔지만 앞으로 국채 매입을 계속해야 하는지 기로에 섰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ECB의 국채 매입이 이탈리아와 스페인 국채의 수익률 급등을 차단하는데 성공했지만 ECB 내부에서는 여전히 국채 매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장-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는 지난주말 이탈리아 북부 도시 세르노비오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참석해 이탈리아가 재정적자 감축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계획했던 부자 증세와 지방 예산 감축 조치를 철회한데 따른 경고로 해석된다.

트리셰 총재는 이탈리아의 확고한 재정긴축 조치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이탈리아 국채를 계속 매입할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FT는 ECB가 이탈리아를 최대한 압박하면서 금융시장의 혼란은 피하는 전략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ECB는 지금까지 1150억유로의 유로존 국채를 매입했으며 오는 8일 통화정책회의를 열어 금리 정책과 더불어 국채 매입에 대해 검토할 예정이다. 아울러 그리스의 재정 및 구조 개혁에 대해서도 논의할 예정이다.

지난주 ECB는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연합(EU) 등과 함께 진행하던 그리스에 대한 실사와 추가 지원 방안에 대한 논의를 전격 중단했다. 그리스가 올해 재정적자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 확실한 가운데 ECB 등은 추가 긴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으나 그리스 정부는 긴축 때문에 경기침체가 악화되며 세수가 줄고 있다고 반발했기 때문이다.

ECB는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재정적자 감축 노력이 만족스럽지 않은데다 유럽과 미국의 경제 전망마저 급격히 떨어지고 있어 고민스러운 상황이다. 특히 트리셰 총재는 지난달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전세계 중앙은행장들 모임에서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대화한 뒤 이후 중기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재점검하고 있다고 밝혔다.


FT는 이에 대해 트리셰 총재가 버냉키 의장과 의견을 주고 받은 뒤 미국의 경기 약화로 글로벌 경기 둔화가 확실시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하지만 트리셰 총재의 8일 통화정책 이후 간담회에서는 여전히 인플레이션 매파적인 발언을 할 수 있다고 FT는 전망했다. ECB가 조기에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시장의 전망을 차단하면서 ECB의 최근 국채 매입에 대해 비판적인 독일의 시선을 감안해 발언 수위를 조절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FT는 트리셰 총재가 인플레이션에 완화된 태도를 보이면 독일의 지지는 더욱 낮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독일 코메르츠방크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요르그 크레이머는 ECB의 평판이 "지배적인 요소가 아니라 부산물처럼 여겨질 수 있다"고 걱정하며 ECB가 성장률 전망을 어떻게 조정하든 금리 인하를 정당화시킬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이탈리아와 그리스 또는 글로벌 경제의 상황이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 때처럼 급박해지면 빠르게 바뀔 수 있다고 FT는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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