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고, 한계를 넘었다'…日기업, 생존의 몸부림

머니투데이 조철희 기자 2011.08.0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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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 "볼트 하나까지 비용절감 총력전"…중소기업은 업종전환도

대지진 피해를 극복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던 일본 기업들이 최근 급격한 엔고로 2차 충격에 빠졌다. 일본 정부가 대지진 이후 처음 엔화 매도 개입으로 급격한 엔고에 제동을 걸고 나섰지만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한 엔고 추이는 계속될 수 있다는게 일본 기업들의 고민이다.

엔고가 감내할 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고 판단한 일본 기업들은 정부에 강력한 대책을 촉구하는가 하면 처절한 비용 절감을 시도하고 더 나아가 엔고를 벗어나기 위한 '탈(脫) 일본'까지 추진하고 있다.



◇앉아서 죽게 생겼다=일본 수출기업들은 대지진 여파와 함께 올들어 지속되고 있는 엔고로 이중 타격을 받으며 실적이 급격히 악화됐다. 자동차회사인 토요타와 마쓰다는 지난 분기(4∼6월) 적자를 냈다. 전자회사인 파나소닉은 엔/달러 환율이 1엔 낮아지면(엔화 가치 상승) 이익이 38억엔(약 500억원) 감소한다.

대지진 피해를 겨우 수습해 회복에 박차를 가하던 기업들은 엔고에 발목이 잡혀 절망감마저 느끼는 모습니다. 일본 자동차공업협회와 전일본 자동차산업 노조총연합회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엔고가 비용 절감 등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며 "현재 환율 수준이 장기화되면 국내 사업기반을 유지하는데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가와 조지 닛산 부사장은 "온갖 종류의 대응을 다 동원하고 있으나 현재 환율 수준은 비정상적"이라며 "개별 기업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야마키 카츠지 마쓰다 부사장은 "사업이 유지되지 않을 정도의 투기적인 환율"이라며 "앉아서 죽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일부 기업들의 '일본 엑소더스' 조짐도 포착되고 있다. 3일 저녁 총리 관저에서 열린 신성장전략 실현 회의에서 오카무라 다다시 일본상공회의소 회장은 "제동이 걸리지 않는 엔고에 회원사 절반 이상이 해외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에 따르면 최근 엔고를 피하기 위한 해외 투자 상담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실제로 혼다는 최근 멕시코에 자동차 공장 신설을 추진하고 있으며 히타치는 55년만에 TV 자체 생산을 포기하고 전량 해외로 위탁했다. 이같은 기업들의 엑소더스 현상은 일본내 산업공동화 우려를 낳고 있다.


◇볼트 하나까지 비용 절감=일본 최대 기업 토요타는 엔고의 직격탄을 맞았지만 "국내 제조업을 지키면서 엔고에 대응해 나갈 것"이라며 국내 생산 사수를 결의했다. 특히 "자신의 성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며 정부에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반응도 보였다. 토요타는 대신 비용 절감 총력전을 선언했다. 이지치 다카히코 토요타 전무는 "볼트 한개까지 비용을 절감하겠다"고 말했다.

엔고로 지난 분기 매출액이 810억엔 감소한 도시바는 선물환 계약과 해외 거래처와 외화 결제 확대 등으로 환율에 좌우되지 않는 체제를 구축하고 나섰다. 엔고 현상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돌입한 것이다. 마쓰다도 선물환 계약을 통해 일단 엔고의 충격을 피해가면서 비용 개선과 판매 전략 변화 등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몸집이 작은 중소기업들은 엔고가 장기적인 환경으로 굳어질 것으로 보고 업종 전환도 고려하고 있다. 신시장 개척과 신기술 개발에서 엔고의 해법을 찾는 기업도 있다 이들 기업은 정부에 업종 전환 비용이나 판로 개척, 신시장 진출, 신기술 개발 등에 정부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들이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것은 정부의 시장 개입이지만 개입의 장기적 효과에 대해선 의문을 품고 있다. 미국과 유럽 경제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으면 달러와 유로화 약세가 이어지며 엔고가 지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이 경기 약화를 막으려 추가 양적완화에 나선다면 엔화는 추가 절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스터 엔'으로 불리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일본 재무상은 올해말까지 엔/달러 환율이 75엔선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상했다. 히라노 에이지 전 일본은행 통화정책위원은 "엔고는 일본 경제의 가장 큰 불확실성"이라며 "일본 기업들은 재기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지만 엔고가 모든 기대를 날려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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