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토브룩에서 이집트로 탈출한 한국 건축업체 ‘공간’의 직원 9명이 이집트 카이로의 민박집 거실에 모였다.(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윤엽 기사, 진용석 과장, 지윤광 기사, 송창근 두바이 지사장, 강헌중 부장, 이동희 리비아 지사장, 김명호 총괄 부장, 문세훈 부장, 허정 부장
23일 오전 4시30분(현지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마아디 지구 민박집에 한국인 9명이 승합차를 타고 나타났다. 리비아의 신도시 건설 현장에 있던 한국 건축업체 공간의 직원들이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피곤이 가득한 얼굴 위로 며칠 만에 처음으로 안전한 곳에 발을 내디딘다는 안도감이 비쳤다.
이동희(57) 지사장은 “사흘 사이에 관공서 5곳이 불에 타고 민간인 7명이 사망한 상태라 수도 트리폴리에서 귀국행 항공기를 탈 생각으로 일단 서쪽으로 달렸다”고 말했다. 토브룩에서 트리폴리까지의 거리는 1500㎞다. 약 700㎞를 달렸을 때 도로가 봉쇄돼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다시 갔던 길을 되돌려 토브룩으로 돌아왔다. 약탈을 피하기 위해 주변에 민가가 없는 비포장 도로를 주로 이용했다.
공사 발주처인 리비아 주택공사에서 발급해 준 통행증 덕분에 다행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국경 출입국관리소에는 직원이 아무도 없었다.
리비아 정부가 이 지역 통제를 포기한 것이었다. 22일 오후 2시, 국경을 지키고 있던 군인들은 외국인 신분만을 확인하고 이집트 땅으로의 길을 열어줬다. 1600㎞의 긴 여정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이들은 국경을 통과한 뒤 이집트 접경 도시 엘 살룸에서 주이집트 한국대사관이 보낸 승합차에 옮겨 탄 뒤 다시 700㎞를 달려 카이로에 도착했다. 리비아에서 신도시 건설의 감리를 맡았던 이들 중에는 이라크에서 피란한 경험이 있는 김명호씨도 포함돼 있었다. 김씨는 2005년 북부 쿠르드 지역의 유전개발 업체에서 일하다 한국인 납치·피살 사건으로 철수명령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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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지역 자치정부와 현지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이라크가 리비아보다 훨씬 안전했다”고 말했다. 이 지사장은 “현재 리비아 동북부 지역에도 수백 명의 한국인 기업체 직원이 있다. 우리에게는 다행히 리비아의 주택공사에서 내준 통행허가증이 있었지만 그들은 이조차 없어 통행에 제한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9명의 공간 직원은 24일 두바이를 경유해 귀국길에 오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