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결국 양분화의 길 걷나?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2010.11.3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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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안정화 작업 가속화될 수록 양분 심화…서유럽, '연대책임' 회피?

유로존 재정위기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키 위한 회원국들의 노력이 역설적으로 유로존의 분열을 앞당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유럽연합(EU)은 독일과 프랑스 등 서유럽 주요국 주도로 재정 건전성 개선안을 속속 내놓고 있지만 회원국 크레디트티폴트스왑(CDS)은 오히려 상승폭을 늘리며 새 대책이 위기를 키울 수 있다는 시장 우려를 반영하고 있는 것.

일각에서는 유로존의 재정 안정화 작업이 궤도에 오를 수록 지역 경제가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1부리그와 국가 재정이 취약한 남·동유럽 2부리그로 확연히 양분될 것이라는 전망도 고개를 든다.



29일(현지시간)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 소위 'PIGS' 문제국의 CDS는 일제히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특히 아일랜드에 이어 다음 구제금융 신청국으로 거론되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상승폭이 높았다. 스페인의 5년물 CDS는 전거래일 대비 8.83% 급등한 351.24를 기록했으며 포르투갈의 CDS는 7.26% 올랐다.

외환, 주식을 중심으로 한 금융시장도 요동쳤다. 유로화는 달러 대비 두 달 최저 수준으로 절하됐으며 영국, 프랑스,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 주요국 지수는 대부분 2%대 급락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이날 EU가 내놓은 새로운 유로존 재정 안정화 방안이 오히려 화근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EU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등 서유럽 주요국 주도로 유로존에 재정위기가 발생할 시 이 지역 국채를 보유한 개인 투자자들도 채무를 분담해야 한다는 방안에 합의했다. 채무 책임을 분명히 하고 이른바 '모럴 해저드' 제거를 통해 회원국들의 장기적 재정 펀더멘털이 강화될 것이라는 명목에서다.

하지만 민간 투자자가 강제로 손실을 볼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재정상태가 좋지 못한 국가에 대한 국채 투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미 문제국가로 지목된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의 재정 붕괴가 한층 가속화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유럽외교관계협의회(ECFR)의 호세 이그나시오 토레블란카 대표는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를 통해 "옳은 일을 하지만 역설적으로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let there be justice, though the world perish)"고 평가했다.

특히 독일이 자국 경제 보호를 위해 이 같은 결정을 주도, 유럽 경제를 양분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독일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저개발된 남유럽 국가에 대한 수출과 시설 투자로 자국 경기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제는 중국과 러시아 등 신흥국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며 남유럽 국가는 파산위기에 몰린 문제아로 전락한 상태다. 독일로서는 같은 유로존 테두리에 묶여 남유럽 리스크의 연대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EU의 이번 결정을 전후로 소위 문제국들의 비판이 유독 독일에만 몰린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게오르기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는 "독일이 부실 국가의 국채 금리 급등을 부추겼다"고 직격타를 날렸으며 미콜라이 도브기엘 레비치 폴란드 EU 대리대사는 "독일 혼자서 모든 결정을 내려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독일은 표면적으로 이번 결정이 유로존 전체의 회생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상은 이날 "우리가 유로화 방어에 실패할 경우 독일은 경제, 사회, 재정 등 모든 부분에서 상상할 수 없는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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