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훈민정음 원본을 찾아내고 간송미술관을 세웠다.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1926년 휘문고등보통학교, 1929년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졸업 후 1932년 서울 관훈동의 한남서림을 인수하고 한국의 문화재들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문화재들을 수집했다.
안동에서 당시 2000원의 큰돈을 주고 산 훈민정음 원본에 관한 일화와 존 개츠비의 소장품인 고려청자의 수집에 대한 일화는 유명하다. 1940년 보성고보를 인수했으며 1945년에는 1년 동안 보성중학교 교장을 맡았다. 1960년에는 이전부터 그를 돕던 김상기, 김원룡, 최순우, 진홍섭 등과 함께 '고고미술 동인회'를 만들고 '고고미술'이란 동인지를 발간했다. 1962년 그의 사후에 문화훈장이 추서됐고 1966년 보화각은 간송미술관으로 바뀌었다. 북단장에는 한국민족미술연구소가 설립됐다.
이곳은 장마를 피해 1년 중 5월과 10월 각각 2주씩 전시회를 연다. 때문에 미술관이 열리는 봄, 가을이면 김홍도, 신윤복 등 조선시대 최고의 예술품을 보기 위해 매년 1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모여든다. 관람자들은 적어도 한두 시간은 미술관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간송미술관의 소장품은 질적인 면에서 국내 국·공·사립을 불문하고 명실 공히 최고라는 평을 받는다. 삼국시대부터 조선말 근대에 이르기까지 전 시대에 걸쳐 있으며 서화는 물론 조각과 공예 등 조형미술 모든 분야를 아우른다. 국보 12건, 보물 10건 등 22건의 국가 지정문화재를 비롯해 뜰에 전시된 석탑, 부도, 불상 등 서울시 지정문화재 4건도 보관돼있다. 전문가들은 간송미술관 소장품만으로 한국미술사를 서술할 수 있으며 이를 제외한 한국회화사는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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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에 방문하려는 관람객은 전시일정 확인이 필수다. 전시기간이 짧은데다 전시일 외에는 출입이 통제돼 허탕을 칠 수 있어서다. 미술관 공식 홈페이지가 없어 전화나 미디어를 통해 문의해야한다. 미술관 규모가 작아 주차가 불가하며 대중교통을 이용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