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그야말로 조심스러운 금통위

더벨 한희연 기자, 강종구 기자 2010.08.13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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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K Watch]

더벨|이 기사는 08월13일(11:58)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국내 경기는 좋다. 앞으로도 좋을 것 같다. 위기 이후 회복을 넘어 확장세에 들어갔을 수도 있다. 물가는 수요압력이 커지고 공공요금과 원자재 가격 상승까지 겹쳐 기대 인플레 압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8월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의 경기에 대한 진단을 간단히 요약하면 위와 같다. 향후 통화정책 방향에 대한 스탠스는 성명서에 나타난 표현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간단하고도 명료하다. 그러나 이를 해석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첫째, 금융완화 기조를 유지할 것



둘째, 견조한 성장을 지속하는 가운데 물가안정이 유지될 수 있도록 운영할 것

금융완화 기조를 유지한다는 것은 기준금리를 '적정한 수준'으로 올리는 것을 금통위가 목표로 하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금리정상화를 시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앞으로 추가 금리인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략 4.0~5.0% 범위에 있을 적정선을 향해 바삐 나아가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기준금리를 적정 수준으로 올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는 것은 결국 본격적인 출구전략을 시행하고 있지 않다는 뜻으로 확대 해석될 여지가 있다.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세계 각국, 그리고 한국은행도 예외없이 선택한 것은 사상 초유의 저금리라는 '극약처방'이었다. 이는 총수요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거품'을 조장하겠다는 것이고, 저금리를 유지하겠다는 것은 중앙은행이 (한 번의 금리인상으로 거품공장의 가동률이 아주 미미하게 하락하기는 하겠지만) 거품공장 역할을 계속하겠다는 뜻이다.


'견조한 성장을 지속하면서 물가안정이 유지될 수 있도록' 통화정책을 운영하겠다는 것에 대한 총재의 해석은 매우 흥미롭다.

한국은행의 정책 목표는 물가안정이다. 물가안정은 경제가 과하게 상승하거나 과하게 하락하는 것을 막고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다. '과하다'는 것의 판단기준은 잠재성장률이다. 결국 한국은행이 하는 일은 성장이 우리경제가 갖고 있는 잠재적인 수준을 위로든 아래로든 크게 이탈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고, 이는 곧 물가안정을 도모하는 것이다.



따라서 통상적으로 한국은행 통화정책의 운영은 '물가안정의 기반 위에서 견조한 성장이 지속되도록' 또는 '견조한 성장이 가능하도록 물가 안정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7월 성명서에는 그렇게 돼 있었다.

"앞으로 통화정책은 금융완화기조를 유지하면서 우리 경제가 물가안정의 기조 위에서 견조한 성장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운용하되 국내외 금융경제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수행해 나갈 것이다. -2010년 통화정책방향 발표문 중 발췌



그런데 앞뒤가 바뀌었다. 순서의 뒤바뀜에 대해 총재의 설명은 이렇다.

"물론 의도한 겁니다. 견조한 성장을 이끄는 것이 지난 번까지는 상당히 필요했지만…(중략) 견조한 성장세에서 앞으로는 물가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정치적인 과제가 될 것입니다. (중략) 물가가 중요하다고 해서 그 즉시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그야말로 조심스럽게 그러나 적절한 방법을 통해서 이 두 가지를 조화시키는 방법을 매달매달 찾아가고 있다"

물론 그전에 비해 통화정책의 무게 중심이 성장에서 물가로 상당 부분 이동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한국은행이 본연의 자리로 돌아왔다고는 볼 수 없다. 한국은행은 여전히 물가 보다는 성장에 신경을 더 쓰고 있고, 그 와중에서 금리 인상을 시작한 것이다.



한 마디로 한은의 입지, 더 정확하게 말해서 총재와 금통위의 입지는 매우 좁다고 할 수 있다. 물가가 허용하는 한 성장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성장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물가를 관리한다는 입장이 더 강해 보인다. 다소 성장을 희생하더라도 향후에 거품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전적으로 손을 쓰는 '선제적 통화정책'은 사실상 어렵다고 볼 수 있다.

금통위가 금리인상을 추가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인상을 할 수 있는 여건의 '정도'에 대해서는 한국은행 집행부와 금통위 사이에 온도차가 느껴진다.

최근 만난 한국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고작 한 번 올리고 말겠다고 금리인상을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 아니냐. 금리 정상화를 시도한 것인데, 솔직히 그게 얼마나 가능할 지는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집행부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금통위에 대한 아쉬움이 그의 말 속에 배여 있었다.



반면 총재와 금통위는 말 그대로 '매우, 그야말로 조심스럽게' 추가 인상을 모색하고 있다. 웬만한 위험쯤 감수하는 결단을 기대하기 어렵다. 언젠가 추가 금리 인상이 이루어지겠지만, 현재로서는 그 시점을 예상하기가 매우 어려운 이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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