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발목 잡혀 인생 꼬인 사람들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2010.08.0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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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하우스푸어/집 가진 가난뱅이의 고단한 삶

전국이 끙끙 앓고 있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안고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한 이들이 이른바 ‘하우스푸어’의 위기에 몰렸다.

MBC의 김재영 PD가 쓴 <하우스푸어>를 보면 수도권에서만 71만3000가구, 전국적으로 159만5000가구가 주택담보대출을 짊어진 채 집값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 부채를 안고 신규 분양을 청약한 것으로 예측되는 23만7000가구와 28만5000가구를 포함하면 규모는 더욱 커진다.



호가 위주로 시세를 파악하는 것으로 알려진 부동산 정보업체의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조차 연일 아래를 가리키는 파란색이다. 21주 연속 하락세다. 반면 금리인상 압박은 더해만 간다. 한국은행은 7월9일 기준금리를 2.00%에서 2.25%로 인상했다. 15개월간 지속됐던 ‘평화’가 깨진 것이다.

주택을 구입하느라 무리하게 금융권에서 돈을 빌린 사람들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실제 이들의 생활은 어떨까?




Case1. 겨울 난방은 꿈같은 이야기

S그룹 계열사에 다니는 직장인 정도진(35 가명) 씨는 아파트 구입을 천추의 한으로 여긴다. 아파트 구입을 위해 받은 대출 이자가 소비 패턴을 완전히 뒤바꿔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2006년 말 ‘지금 무리해서라도 사지 않으면 평생 내 집 마련의 기회는 없다’는 지인들의 재촉에 마음이 급해져 용인의 A아파트 38평형을 분양받았다. 분양가 3억3000만원 중 2억원은 대출로 충당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평생 내 집을 가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매달 지불해야 하는 이자만 120만원이다. 월급 350만원에서 두자녀의 양육비와 교육비를 제외하고 나면 원금 상환은 생각할 겨를도 없다. 여름에는 전기료가 걱정돼 에어컨을 켜지 못하고, 겨울에는 기름값이 두려워 난방조차 하지 못하는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빈민이 된 정씨가 집을 팔지 않고 버티는 이유는 매몰비용에 대한 미련 때문이다. 그동안 은행에 납입한 이자비용만 5000만원이 넘는다. 2억원 대출금은 여전히 남아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주택을 처분해봐야 대출금을 갚고 나면 들어갈 전셋집도 구하기 힘들다.



‘언젠가는 나아지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로 버티고 있지만 자녀 교육비가 점차 늘어나는 것이 여간 부담이 아니다.

“하루하루 은행을 위해 일하고 있어요.” 씁쓸한 웃음과 함께 정씨는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표현했다.

Case2. 45평 아파트 꿈, 현실은 녹물 샤워



주부인 고순덕(57 가명) 씨는 2007년 6월 재건축단지로 유명한 가락동 B아파트 전용 52㎡(17평)를 7억1500만원에 구입했다. 사업시행인가를 받기 직전이었다. 송파에 위치한 45평짜리 새 아파트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매력적이었다. 가지고 있던 집을 처분해 마련한 2억5000만원 이외의 부족한 돈은 은행에서 충당했다.

내 집은 있지만 전세살이를 택했다. 아파트가 낡아서 생활하기 불편했기 때문이다. 전세금은 이 아파트 전세금으로 충당했다. 매달 꼬박꼬박 150만원 정도의 이자가 나갔지만 재건축만 이뤄지면 큰돈을 만질 수 있다는 생각에 꿋꿋하게 버텼다.

하지만 현실은 고씨의 계획과 달랐다. 당초 알려진 분담금이 어느새 두 배가 넘게 뛰었다. 많게는 3배 가까운 분담금을 내야 하는 곳도 있었다. 분담금이 높아지면 그 만큼 조합원의 수익은 줄어들게 된다.



때문에 가격은 좀처럼 오르지 못하고 있다. 등락을 거듭하고 있지만 3년 전에 비하면 여전히 마이너스다. 국토해양부의 아파트실거래가격을 보면 올해 6월 초에 5억9000만원에 두 건이 거래됐다.

고씨는 “2008년 12월 5억원에 거래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앞이 깜깜했다”면서 “지금 이정도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아파트 자체도 말썽이었다. 세입자가 집에 보일러가 물이 샌다며 수리를 요구한 것이다. 가뜩이나 큰 손실을 떠안은 터에 재건축될 아파트의 보일러를 수리하자니 쉽게 승낙할 수 없었다. 얼마 뒤에는 수돗물에 녹물이 나와 피부병에 걸렸다며 소송을 하겠노라고 통보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세입자를 내보내고 직접 들어가 살아야하는 고 씨의 심정은 막막하기만 하다.

Case3. 건설사 임원, ‘나도 피해자’

중견건설업체 임원 박기호(48 가명) 씨는 '억지로' 다주택자가 됐다. 회사 보유분 미분양 물량을 떠안아서다.



2006년 이후 전국적으로 미분양 물량이 쌓이면서 건설사가 임직원에게 할당 물량을 배분했다. 박 씨의 회사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박씨의 할당 물량은 2채였다.

아파트가 워낙 고가다 보니 좀처럼 판매되지 않았다. 겨우 한채를 친척에게 떠넘기다시피 했지만 나머지 한채를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박씨는 자신의 이름으로 사지 않아도 될 아파트 계약서를 작성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회사에서 이자를 대납해줬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 악화로 회사가 어려워지자 자연스레 이자부담까지 떠안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퇴출당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최근 계약한 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했지만 박씨는 등기를 하지 않고 있다. 2주택자에 대한 중과세 때문이다. 고분양가를 통해 폭리를 취했다는 이유로 공공의 적이 된 건설업체지만 박 씨 개인으로 보자면 비자발적 하우스푸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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