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표결, 주홍글씨 되나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10.06.29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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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안 찬성, 반대 의원들 성향 고스란히 드러나

"수정안에 찬성하는 분들이나 반대하는 분들 모두가 애국이었음을 믿는다. 이제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야, 진보와 보수에서 벗어나 우리는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다"

29일 세종시 수정안의 본회의 표결 직전 반대 토론에 나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수정안을 두고 맞서온 당내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 분열을 이번 표결을 계기로 매듭짓자는 얘기였다.



앞서 표결을 5시간여 앞둔 이날 아침 같은 당 김무성 원내대표도 비슷한 말을 했다. 김 원내대표는 "세종시 문제로 더 이상 편 가르기를 하면 안 된다"며 표결 이후 당 화합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날 본회의에서 수정안이 찬성 105표, 반대 164표, 기권 6표로 부결된 이후 정국이 박 전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바람'대로 흐르긴 어려울 것 같다. 본회의장 전광판에 찬성과 반대로 나뉜 의원들의 이름이 고스란히 공개되고 기록된 표결 자체가 이미 '낙인' 또는 '줄서기'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 세종시 표결 찬성 반대의원 누구?

지난 22일 세종시 수정안 관련법안이 국회 국토해양위에서 부결된 직후 여권 주류인 친이계가 수정안을 본회의에 재부의하겠다며 내건 명분부터가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누가 수정안에 찬성했고 반대했는지 선긋기를 확실히 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적잖았다.



청와대 인식도 다르지 않았다.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은 지난 24일 국회 운영위에 출석, "세종시는 워낙 중차대한 사안이라 충분히 토론해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둬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준 정무수석은 25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상임위에서 부결됐지만 국회의원 전체의 뜻을 물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 때문에 이번 표결이 '살생부' 작성을 위한 것이라는 얘기까지 돌았다. 친이계가 2012년 총선 공천을 앞두고 진짜 자기편이 누군지 줄 세우기 작업에 착수했다는 분석이다. 한 친박계 의원은 "역사의 기록이 아니라 충성 기록인 셈 아니냐"고 말했다.

친박계 고립을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모래알'이란 비판이 적잖았던 친이계 내부를 단속하는 동시에 세종시 원안에 찬성하는 보수층과 이에 맞선 친박계의 거리를 넓히겠다는 노림수라는 것이다. 여권 한 관계자는 "이런 점 때문에 이번 표결 결과는 어떤 식으로든 계파 화합보다는 계파 분열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책임론 차원에서도 수정안 표결 기록은 '낙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지난해 9월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가 처음으로 수정안 구상을 밝히면서 논란이 됐을 때도 세종시 원안 처리 당시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의 명단을 두고 책임 공방이 있었다.

당장이야 어떨지 몰라도 친이계에선 시간이 지나면 수정안에 찬성하는 여론이 확산될 것을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이렇게 된다면 이번 표결에서 수정안에 반대한 의원들은 상당한 타격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수정안 부결 이후 원안이 난항이 빠져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들 경우에도 책임은 원안고수파에 쏠릴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개별 의원들이 어느 쪽으로 표결했든 자신의 선택이 '소속'된 계파나 정당의 이해관계에 더 얽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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