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진씨는 "운 좋게도 유복한 가정에서 평생 부족함 없이 살아왔다"며 "결혼해서 허리띠 조이고 살아갈 자신도 없고,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헌신할 자신도 없다"고 털어놨다.
직장인 유민정씨(가명, 33)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이혼을 했거나 준비 중인 친구들이 내 주변에만 벌써 여러 명 있다"며 "결혼을 해봐야 별게 없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져서 지금은 그냥 연애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도 변했다= 딸을 아들 못지않게 공부시키고, 뒷바라지해온 어머니들도 변했다. 현재 소위 '결혼 적령기'라고 하는 20~30대 자녀를 둔 어머니들은 주로 50~60대이다. 대체로 전업 주부로 살았고, 자식을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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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자신의 인생을 딸이 답습하지 않길 원하는 어머니가 늘어나면서 딸들의 가치관을 변화시키고 있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현재 기혼 남성의 79.7%는 '결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여성은 65.2%만이 동일한 응답을 했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대답도 남성은 1.7%에 그쳤지만 여성은 3.2%로 두 배 가량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혼에 대해서도 기혼남성은 71.7%가 '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지만 기혼여성은 58.6%만이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광고회사에 근무하는 김연지씨(가명, 35)는 "아버지는 볼 때마다 결혼하라고 성화시지만 어머니는 20대 때부터 결혼을 안 해도 된다고 말해왔다"며 "과년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대해 느긋할 수 있는 건 어머니 덕분"이라고 말했다.
연지씨는 "딸도 아들이랑 똑같이 돈 들여서 공부시켰고, 취직해서 일도 잘 하고 있기 때문에 결혼으로 이 모든 걸 잃게 될까봐 늘 걱정 하신다"며 "어머니는 결혼을 하더라도 일은 계속 하라고 입버릇처럼 말씀 하신다"고 덧붙였다.
◇출산, 꼭 해야 하나요?=여자들과 엄마들을 변하게 한 저변에는 '출산'에 대한 인식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여성이 결혼을 서두르는 이유 중 하나는 노산에 대한 두려움과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늘어난 육아 및 교육 부담 등으로 '결혼을 하면 출산을 꼭 해야 한다'는 명제가 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결혼에 대한 생각도 바뀌고 있다.
방송계에 종사하는 한혜진씨(가명, 32)는 "여자들이 결혼을 빨리 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노산의 위험 때문이지 않느냐"며 "하지만 나는 꼭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에 결혼이 급하지 않다"고 말했다.
대학가에서 카페를 운영 중인 안혜민씨(35, 가명)도 "남자친구가 40살이지만 결혼은 좀 더 있다 생각해 볼 것"이라며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내 생각에 남자친구도 동의했기 때문에 결혼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