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했다가 거절당했을 땐 그냥 튕기는 건줄 알았어요. 그런데 내년에 유학을 가겠다면서 기다릴 거면 기다리고 못 기다려도 저를 원망하지 않겠다고 하네요. 5년이나 사귀었는데 이 나이에 이런 소리를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회계사 서OO씨, 36세, 남)
비단 연인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다. 지금 당장 애인이 없는 여성들도 결혼을 위해 대충 조건을 맞춰 만나는 것은 '사절'이라고 외치고 있다. 결혼을 인생의 '필수'가 아닌 '옵션(조건)'으로 받아들이는 여성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그녀들은 때가 되면 학교에 가고, 취직을 하듯 통과의례로 여겨지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왜'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결혼보다는 자기 자신의 삶을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결혼을 하더라도 남편에게 의지하는 대신 스스로 삶을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이 같은 변화는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유례가 없던 현상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여자는 남자보다 결혼에 있어 '약한 존재'였다. 총각보다는 처녀가 늘 결혼을 더 서둘렀고, 같이 '급한 처지'더라도 소위 노처녀의 부담감은 노총각의 그것과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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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혼을 바라보는 여성들의 시선에 변화가 생기면서 결혼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 결혼자금이 넉넉하지 않다는 이유로 결혼을 미루는 경우는 그나마 남성들 입장에서 합리적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유학을 가겠다거나 일에 집중하고 싶다며 결혼을 거부하는 여성들을 보면 "내가 사는 이곳이 대한민국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는 것이 남성들의 푸념이다.
남녀의 성비 불균형이 빠른 속도로 심화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결혼 못하는 남성들의 하소연은 커질 수밖에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결혼 적령기(남성 28~32세, 여성 26~30세) 남성 100명당 여성 수는 지난해 95명에서 내년엔 88명, 2014년엔 84명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남성 10명 중에 2명은 결혼상대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만하면 결혼 못하는 남성들의 고충이 더 이상 농촌 총각들만의 사연은 아닌 셈이다.
뿐만 아니다. 안 그래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이라는 출산율은 결혼 안하는 여자들이 늘어나면서 더욱 낮아질 전망이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수)은 1.15명으로 OECD 국가 중 최저수준이다. 그것도 5년 연속 꼴찌다. 결혼을 둘러싼 미혼남녀들의 가치관 변화를 관망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그녀들은 왜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일까.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라고 말하는 그녀들의 솔직한 속내를 들어보고 점차 현실화되는 결혼전쟁에 더 늦기 전에 대비해야 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