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금융 산업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투자은행의 몰락에 따른 대형 겸업은행이 생겨나고 있다. 미국의 주요 은행들은 위기 전보다 덩치가 더욱 커졌고, 사업영역도 다각화하고 있다. 유럽의 우량 은행들도 적극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서며 대형화와 국제화를 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우리금융 (11,900원 0.0%) 민영화 등을 계기로 대형은행(메가뱅크) 탄생 논의가 한창이다.
이와 관련 미국·영국·캐나다·프랑스·독일·일본·스위스 등 7개 국가의 10개 금융감독기구 고위경영진으로 구성된 고위감독자그룹(SSG)은 지난해 10월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내놨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24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금융안정위원회(FSB)에 20개 대형은행그룹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가진단 결과를 발표했다.
SSG는 각 금융기관의 자가진단 데이터를 종합한 결과, 지배구조와 인센티브, 인프라의 취약성이 리스크관리를 훼손시켜 이번 금융위기를 초래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음을 발견했다. 금융회사가 실제 부담하고 있는 리스크와 이사회가 판단하고 있는 리스크 간 괴리로 인해 리스크관리에 실패했다는 교훈을 얻었다.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춰야 할 이사회 내 리스관리위원회의 운영이 형식적으로 이뤄졌다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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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은행의 경우 리스크관리위원회를 이사회 소위원회로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 은행들의 리스크관리위원회가 리스크의 감내 수준과 리스크한도, 리스크자본배분 등의 결정을 담당하고 있다. 리스크관리책임자(CRO)가 리스크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을 의무화하지 않은 곳도 있고, 실무와 운영위원회만을 주도하고 있다.
구정한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바람직한 CRO의 권한 및 역할'에서 "CRO에게 의사결정에 대한 독립성을 주고 리스크관리위원회 또는 CEO에게 직접 보고하는 시스템을 통해 소통의 기회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대부분의 해외 은행의 경우 CRO는 리스크위위원회에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한다. 이사회 리스크위원회 의장을 맡는 경우도 있다. 스페인 최대 은행 방코산탄데르의 경우 그룹 부회장이며 이사회 구성원인 CRO가 리스크위원회 의장을 맡아 강력한 리스크관리의 주체로 활동하고 있다. 보고체계도 각 국가별로 차이는 있지만 이사회나 CEO에 보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CRO가 독립적인 지위를 갖기 위해선 임기와 보상수준 등을 명문화 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시중은행의 CEO평균 임기가 3년 정도인 반면 CRO의 임기는 절반 수준인 17.5개월 정도에 그치는 수준이다. CRO가 대부분 미등기임원이고, 임기도 CEO에 비해 짧아 업무의 연속성과 전문성, 영향력을 높이는데 한계도 있다.
구 연구위원은 "CRO의 적정한 임기보장 또는 장기근속을 통해 금유회사가 단기업적 위주로 운영돼 과도한 리스크를 부담하는 것을 예방할 필요가 있다"며 "전략기획, 신규상품 및 비즈니스 승인 등 주요 의사결정에 있어 CRO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리스크관리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무엇보다 최고경영자(CEO)의 적극적 의지와 실천이 절실하다. 진동수 금융위원장 역시 "우리나라 은행의 리스크관리는 CEO의 인식과 의지에 달렸다"고 강조한다. 말만 해서는 절대 이뤄지지 않는 게 리스크관리는 말이다.
예컨대 런던의 AIG FP는 2006년 10월 미국 모기지 관련 손실이 10억 달러 발생했는데, AIG CEO는 "미국 주택시장 부실로 손실이 발생할 일은 거의 없다"며 관련 투자를 확대했다. 리먼브러더스는 리스크관리위원회가 1년에 2차례 형식적으로 개최되는 등 CEO에 대한 견제기능이 아예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