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속내를 보면 그리 편안하지 못하다. 수년간 부동산 시장의 초미의 관심사였던 강남구 대치동의 은마아파트 재개발은 막상 관청의 인가가 떨어지니 가격이 하락한다. 영종도 신축 아파트의 대규모 입주미달 사태로 건설업체가 분양계약해지를 통보하고 재판매에 들어간다는 소식도 들린다. 서울 대부분 지역에서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의 70% 수준에 육박한다. 또 소형평수 아파트 가격이 중대형 아파트 가격과 엇비슷하게 호가된다.
그런데 금융위기가 아이러니하게도 부동산 시장의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금리를 사상 최저치로 인하하면서 부동산 시장이 잠시 숨 돌릴 틈을 갖게 됐다. 또 정부의 엄청난 유동성 공급으로 시중자금 사정이 풍부해지면서 코너에 몰렸던 일부 부동산 파이낸싱이 일단 연장됐다.
그래서 미분양 아파트가 12만(한국은행 통계, 2010년 1월 기준)가구나 남아 있어도 수도권 아파트 가격은 강보합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시장은 이제 '삼대 악재'에 직면해 있다.
둘째,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다. 700만 베이비 붐 세대에서 자영업자를 제외한 300만가량의 봉급생활자 중 금융자산이 충분히 없는 사람은 노후 생계 수단으로 보유한 집을 팔아야 한다. 한꺼번에 매물로 나오지는 않겠지만 지속적인 매도는 향후 10년 부동산시장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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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멀지 않아 시작할 금리 인상이다. 경기회복 강도에 따라 진행속도와 수위가 조절되겠지만 통화환수는 필연적이다. 그런데 고용증대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임금 상승은 제한적이다. 여기에 금리 인상은 원리금을 상환해야 하는 주택담보대출자에게는 큰 압박 요소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집값 하락이 더해지면 은행으로서는 담보가치 하락 분만큼 대출금을 회수해야 한다. 급기야 집값 하락이 담보가치를 낮추고 은행은 다시 대출금을 회수해야 하는 악순환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의 하락은 단기적으로는 경기회복에 악재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긍정적이다. 특히 우리나라 취업인구의 50% 가까이가 소규모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상가 가격 하락에 따른 월세 인하는 이들에게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또 아파트 가격의 하락은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준다. 얼마 전 산은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주택가격이 미국과 일본의 정점보다 높다. 우리나라의 가구소득대비 주택가격이 6.26배로 미국과 일본의 3.55배와 3.7배의 거의 두배 수준이다.
문제는 부동산 가격이 '연착륙' 할 수 있느냐다. 산은경제연구소도 명목가격은 유지하되 실질가격은 낮추는 방향으로 정책을 써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자산 시장의 가격은 결코 얌전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폭등과 폭락이 기본 패턴이다. 금융위기로 확실하게 체험했겠지만 원자재나 유가나 심지어 귀금속까지 어느 순간 쏠림 현상이 나타나면 걷잡을 수 없이 한방향으로 치닫는다. 개인자산의 80%가 투자돼 있는 부동산시장에 '만에 하나' 가격하락이 가속화되면 경기회복에 매우 불리한 환경이 될 것이다. 부동산시장이 불확실성을 더 높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