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3000만원 내려도 안팔리는 이유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2010.04.09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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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도 시점은 언제?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어요.”

지난해 말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에 96㎡(공급면적)의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은 최상덕(35) 씨는 6개월째 문의가 없다며 하소연이다. 가격도 시세보다 3000만원이나 낮춰봤지만 중개업소에서 전화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최 씨는 가격을 더 낮춰서라도 팔아야 할지 가격이 오르기를 기다려야 할지 고민이다.

아파트 거래가 실종됐다. 매도자는 가격을 낮춰도 보러오는 사람이 없다며 울상이고, 대기수요는 집값이 더 떨어질 것이라며 관망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산업은행이 지난달 23일 낸 ‘국내 주택가격 적정성 분석’ 보고서가 눈길을 끌었다. 국내 아파트 가격이 미국이나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 이전의 모습보다 더 위험성이 높다는 의견이었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서울의 PIR(소득대비 집값)은 12.64로 미국의 뉴욕(7.22)이나 샌프란시스코(9.09)보다 높았다. 반면 HAI(주택구입능력지수)는 5년전에 비해 20% 감소해 61.7로 나타났다. 100을 기준으로 숫자가 낮으면 월소득으로 주택 원리금 상환이 어렵다는 의미다. 주택 구입 주요 연령인 35~54세 인구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것도 버블 붕괴 우려를 주장하는 주요 근거로 삼았다.



현대경제연구소의 목소리도 이와 비슷하다. 현대경제연구소는 3월 1일 ‘국내 가계부채,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내놓고 원리금 상환부담이 선진국보다 심각한 수준이라며 부동산 가격 급락과 금리 인상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반면 국토부는 부동산 가격 급락에 대한 보고서 내용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비교 대상에 일관성이 떨어지고 소비자물가 대비 주택가격 상승률이 낮다는 이유였다.

부동산 전문가들도 부동산 폭락보다는 안착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당분간 저금리 기조가 깨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자가주택 보유율이 70%를 밑돌고 있는 것도 연착륙을 기대하는 대목이다.


일부에서 가격 폭락의 근거로 제시하는 베이비부머의 은퇴 역시 올해가 첫 해인 만큼 당장 가격 폭락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기대수명이 높아진 이상 은퇴를 하더라도 창업 등 새로운 소득 창출에 노력을 하지 않겠냐는 시각이다.

◆언제 팔아야 하나



어쨌거나 주택매도 희망자들은 경제연구소의 국내 집값 거품론이 연달아 제기되자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폭락장 분위기가 확산되면 심리적 요인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에서 매도시기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다주택자의 경우 금년 내 매도시기를 잡을 것을 권하고 있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실장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배제가 올해로 끝나기 때문에 연내에 어떻게든 기회를 잡아야 한다”면서 “하지만 투기 수요나 다주택자에게 시장이 결코 우호적이지 않아 매도 시점을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함 실장이 내다보는 연내 매도시점은 하반기다. 당장 시장에서 모멘텀이 없지만 계절적 성수기인 가을쯤 되면 위기설이 진정국면에 들어설 수 있다는 의견이다. 함 실장은 “보통 4~5월 부동산 위기설을 겪고 나면 심리적 위축 상태가 완화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여전히 전세시장이 받쳐주고 있는데다 가을 결혼 성수기가 되면 회복 조짐이 보이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부사장 역시 가을경을 매도시점으로 꼽았다. 박 부사장은 “최근 조정장세는 보금자리 쇼크 때문”이라며 “이사철이 되는 가을에는 단기적 회복세가 있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보금자리 쇼크는 한국토지주택공사가 공급한 중소형분양주택인 보금자리주택이 뛰어난 입지조건과 주변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공급되면서 주택시장과 분양시장이 상대적으로 타격을 입은 현상을 말한다.

반면 상반기에는 좀처럼 기회를 잡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위례신도시와 세곡, 내곡 보금자리주택이 대기하고 있어 내집 마련 수요가 일반 주택시장으로 확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부 전문가는 정부가 부동산 규제완화에 대해 전향적이지 않고, 그동안 주택 가격이 오버슈팅한 경향이 있다며 주택 매도시기에 ‘사실상 답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주택 가격의 조정이 필요하기는 하나 수도권 전체의 고평가는 아니므로 지역적 편차를 고려해 매도시기를 결정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매도자의 주변 상황이 판단에 중요한 변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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