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성 회장의 아쉬움 담긴 'M&A 강의'

머니투데이 정진우 기자 2010.02.04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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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클릭]산은금융그룹 출범 100일...민영화 작업 박차

↑ 민유성 산은금융그룹 회장이 지난 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위기 이후 한국 금융산업의 재도약을 위한 미래비전'에서 '인수합병(M&A) 활성화를 통한 금융회사 성장 전략'을 발표했다.(사진: 산은금융그룹)↑ 민유성 산은금융그룹 회장이 지난 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위기 이후 한국 금융산업의 재도약을 위한 미래비전'에서 '인수합병(M&A) 활성화를 통한 금융회사 성장 전략'을 발표했다.(사진: 산은금융그룹)


#"HSBC, 씨티그룹도 처음엔 작은 은행에 불과했습니다. 그동안 동종, 이종 할 것 없이 인수합병을 잘 해 지금처럼 글로벌 금융그룹이 됐습니다."

민유성 산은금융그룹(산은지주) 회장이 500여 명의 금융업 종사자들을 앉혀놓고 이 같이 주장했습니다. 지난 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 강연회에서입니다.



민 회장은 'M&A 활성화를 통한 금융회사 성장 전략'이라는 발표를 통해 "JP모건과 씨티그룹 등 글로벌 금융그룹도 처음엔 규모도 작고 잘 알려지지 않았다"며 "그동안 성장 배경에는 현명한 M&A전략이 있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날 강연을 듣고 있던 기자에겐 "산은이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M&A전략이 절실하다"는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민 회장은 이틀 전 태국 시암씨티은행(SCIB) 인수를 포기한다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인수 작업이 잘 됐다면 그의 목소리엔 힘이 더욱 실렸을 겁니다.



산은지주와 정책금융공사(KoFC)가 4일 창립 100일째를 맞았습니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10월 28일 55년간 입고 있던 국책은행의 옷을 벗고, 산은지주와 공사로 각각 분리했습니다.

산은지주는 탄생과 동시에 글로벌 CIB(상업투자은행)를 지향했습니다. 오는 2020년까지 세계 20위 투자은행이 되겠다는 야심찬 포부도 밝혔습니다. 그러나 100일이 지난 지금, 출발부터 삐걱거리는 모습입니다. 목표를 위해 한발 한발 내딛고 있지만 순탄치 않습니다.

산은은 지난해 말부터 야심차게 추진한 태국 시암씨티은행(SCIB) 인수를 돌연 포기했습니다. 산은이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거듭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없던 일이 됐습니다.


민 회장은 "인수 조건 중에 산은에게 불리한 게 있었다"며 "나중에 우리에게 큰 리스크로 다가올 것으로 보여 인수를 포기했다"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동안 동남아시아 은행 2∼3곳 인수를 추진해 오던 민 회장으로선 아쉬운 대목일 겁니다.

산은의 해외 진출 계획은 당분간 차질을 빚게 됐습니다. 금융계에선 이번 인수철회를 계기로 산은 민영화 전략에 수정이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리스크가 큰 해외 진출보단 국내은행과의 인수합병을 추진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또 산은이 지난해부터 추진 중인 금호아시아나 (9,770원 ▲280 +2.95%)그룹 구조조정을 놓고, 산은 책임론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구조조정 작업이 탄력 받지 못하고 있어섭니다. 지난해 말 금호그룹과 함께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할 때만 해도 구조조정이 원활히 추진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산은은 억울하다는 표정입니다. 대우건설 재무적 투자자(FI)들이 걸림돌일 뿐 다른 건 문제 없다는 이유에서죠. FI들은 산은의 제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구조조정은 한 달 가까이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구조조정이 제대로 추진되려면 이달 말까진 경영정상화 계획이 나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산은은 이밖에 민영화, 기업 구조조정 등 현안이 산적합니다. 이러한 산은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습니다. 출발이 순조롭지 않다보니 내년 국내 상장과 내 후년 해외 상장도 걱정하는 눈치입니다.



하지만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 아이에게 무조건 뛰어보라고 할 순 없는 일입니다. 수차례 넘어지고 일어난 후에 그 아이는 뛸 수 있습니다. 산은도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했습니다. 이번 시암씨티은행 인수 포기와 같은 경험을 여러 번 겪으며 성장할 것입니다. 또 수신기반 확대를 위한 개인금융본부 설립, 프로젝트 파이낸싱(PF)부문 강화, 신성장동력 사업 추진 등 민영화 작업이 제대로 추진된다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겁니다.

앞으로 10년 후 산은이 글로벌 20위 은행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세계 랭킹이 아닙니다. 조급하게 외형 확장에만 치중하기 보단 내실을 강화해 금융위기와 같은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건실한 투자은행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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