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법 110조는 '표결할 때는 의장이 표결할 안건의 제목을 의장석에서 선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날치기 처리를 막기 위해 2002년 여야 합의로 '의장석에서'라는 문구를 넣어 개정했다. 본회의에 해당하는 규정이지만 국회법 해설서엔 상임위에도 똑같이 적용하도록 돼 있다. 법안 개정 뒤 여야 교섭단체간 협의 없이 안건이 회의장이 아닌 제3의 장소에서 처리된 적은 없다.
이에 대해 국회 예결특위 위원장인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은 "국회법 규정에 회의장 변경을 금지한다는 내용은 없다"고 반박했다. 심 위원장은 "법적 자문을 받았고 예산안 통과는 합법적으로 진행됐다"고 반박했다.
불법이든 합법이든 이번 일이 미칠 영향은 적잖아 보인다. 앞으로 여야간 의견이 맞서는 안건에 대해서는 이번 '선례'를 근거로 회의장 변경 처리가 난무할 수 있다. 정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다음엔 한나라당이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이런 식이면 아예 청와대에서 회의하고 방망이를 두들길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 2002년 전엔 어땠나 = 국회법 110조가 개정되기 전엔 의장이 의장석이 아닌 곳에서 법안이나 예산안을 통과시키는 경우가 적잖았다. 1994년 12월2일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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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춘구 국회부의장이 국회 본회의장 2층 기자석에 등장했다. 예산안 처리를 두고 어김없이 여야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부의장은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예산안을 전격 통과시켰다.
야당은 무효를 외쳤다. 하지만 4일 뒤인 12월6일 당시 황낙주 국회의장은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한 장소라면 어떤 곳에서도 할 수 있다"며 '기자석 사회'를 정당화했다.
3당 합당으로 221석의 공룡 여당이 된 '민자당 국회'에선 상임위원장이 의사봉 대신 손바닥으로 의안을 통과시키는가 하면 국회부의장이 본회의장 의석 가운데 앉아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 안건을 무더기 처리하는 일도 있었다. 국회의장이 본회의장 뒤편 통로에서 안건을 기습상정하고 가결을 선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