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예산 언급…'압박+명분쌓기용'?

머니투데이 여한구 기자 2009.12.2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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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집행되면 국가기능 마비 사태 우려

이명박 대통령이 24일 직접 나서 "연내 내년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준예산 집행 등 관련 대책을 철저히 준비하라"고 지시하면서 연말 예산안 정국이 달아오르고 있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예산안은 국회에서 여야가 알아서 처리할 사안이라는 입장을 견지하며 거리를 뒀다. 이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정부는 준예산 편성을 위한 비상국무회의 시점도 내년 1월1일로 못박았다.



◇단독처리 위한 명분쌓기?=이 대통령이 앞장서 민감한 준예산을 언급한 데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4대강 예산 삭감을 요구하며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민주당을 압박하면서 합의처리가 여의치 않을 경우 여당 단독처리를 위한 명분을 쌓기 위한 포석으로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의 발언 이후 기획재정부는 이용걸 제2차관 주재로 긴급 기자브리핑을 열어 "예산안이 연내에 통과되지 않으면 내년 1월1일 비상국무회의를 열어 준예산을 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한 실무 준비작업에 착수했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엄포용이 아닌 실제 액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읽힌다.

사실 재정부 안팎에서는 예산안 합의처리의 '마지노선'을 24일로 봤다. 25~27일이 크리마스와 주말로 이어지는 연휴인 점과 예산배정까지는 3~5일이 더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24일에는 통과돼야 내년 1월1일부터 정상적인 집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권 사정상 24일 합의가 물건너가면서 '극약처방'을 위한 내부 준비에 돌입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통한 여당 단독처리가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실제 사상 초유의 준예산 집행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준예산 집행시 어떤 일이?=준예산은 1960년 제3차 개헌 때 도입된 제도다. 의원내각제였던 당시에는 준예산 집행이 내각총사퇴와 의회 해산 요건이었기 때문에 도입이 필요했다.



그러나 제도상으로만 존재했지 헌정사상 실제 운용된 적은 한 번도 없다. 당연히 준예산 집행에 관한 구체적인 절차를 다룬 하위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도 준예산 범위와 규모에 대해서는 "검토를 더해봐야 한다"고 자신있는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실무진도 준예산 세부 내용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는 이날부터 착수했다.

헌법 54조 3항에 따르면 준예산 편성 기준은 △헌법 또는 법률에 의해 설치된 기관의 유지·운영 △법률상 지출의무 이행 △계속비 사업 등 3가지 뿐이다.



범위를 좁혀서 계산하면 공무원 인건비와 청사 유지관리비, 법적 의무지출사항인 기초생활수급자 급여지원비, 이전부터 이어져온 국책공사비 정도만 준예산 편성을 통해 지급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준예산이 실제 집행되면 정상적이 국가기능이 마비되는 사태가 올 수 밖에 없게 된다.

사회기반시설(SOC) 사업의 경우 내년 예산 24조8000억원 중 연도별 예산배정계획이 확정된 계속비는 20% 가량인 5조2000억원에 불과해 막대한 차질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이보다도 올해 예산이 확정돼야 내년 집행이 가능한 서민층 대상 사업이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했다.

취업후 학자금상환제도, 중증장애인연금제도, 희망근로, 보금자리주택 확대공급 사업, 저소득층 치매노인 약제비 지원사업 등의 사업이 새 예산안이 통과되기 전까지는 무더기로 중단될 수 밖에 없어서다.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에 힙입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빠르게 경제위기에서 회복하면서 쌓아놓은 국가신인도에도 타격이 불가피해진다.



재정부 관계자는 "준예산이 집행되면 이제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경기회복의 불씨를 꺼뜨리고, 대외 신인도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며 "준예산이 실제 집행되는 사태까지 가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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