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키코의 추억

류병운 홍익대 교수(국제통상법) 2009.11.26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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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시평]키코의 추억


미국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한 2008년 9월 중순부터 세계경제가 급속하게 냉각되며 국내외 투자 펀드들이 반토막 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펀드운용사가 원래 투자설명서에 명시된 투자회사를, 하필이면, 리먼으로 바꾸는 바람에 투자금을 모두 날리고 현재 투자자들에게 배상책임에 직면한 경우도 있다.

우리 금융시장에서 달러가 빠져나면서 2008년 말 환율이 1500대를 오르내리자 키코(KIKO)문제가 불거졌고 현재까지 그 손실이 3조300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외국 금융계약상품을 들여와 판매한 경우인 키코에 대해서는 월가에서 고안된 사기의 덫에 애꿎은 우리 수출 중소기업들이 걸려들었다며 국제소송을 통해 그 사기성이 가려질 때까지 정부가 키코 이익 송금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다소 극단적·국수적인 주장도 제기되었다.

다행히 위기의 터널을 벗어나고 있는 지금 불과 1년 전의 일들이 이미 먼 과거가 되어버린 분위기다. 국내 한 자산운용사가 최초로 '리버리지(leverage) 인덱스 투자펀드'를 만들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문득 미래의 또 다른 위기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이 당시 금융위기 상황을 심각하게 반추해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계적 커뮤니케이션 컨설팅사인 플레시먼힐러드의 데이브 시네이 회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미국발 금융 위기 당시 정부, 전문가, 금융기관 등이 (이미 문제점을 인식하고서도) 마치 타조가 제 머리를 모래 속에 처박듯 문제에 대해 명확하게 소통(커뮤니케이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때때로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는 타조의 버릇에서 유래한 '타조원칙(the ostrich doctrine)'은 불법 사실에 대해 의도적으로 눈을 감아버린 경우는 마치 그 사실을 알고 불법에 동조한 경우로 같이 판단한다는 법원칙이다.

시네이 회장은 '타조원칙'을 통해 당시 벌어지고 있던 위험의 증가, 도덕적 헤이, 위법적 관행들 감지하면서도 문제 해결을 위한 소통을 의도적으로 회피함으로써 상황이 세계 금융위기로 악화시킨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문제를 인식하고도 머리를 땅에 처박은 것은 한국의 타조들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장밋빛 수익률을 제시하며 투자자 모집에만 급급했던 운용사들, 이를 묵과한 금융당국, 기대수익률만 보고 위험성은 눈감은 채 불나방처럼 몰려들던 투자자들 말이다.

금감원이 작성한 키코 관련 은행 사후 점검 보고서가 중소기업의 연간 수출예상액을 초과한 약정금액의 환헤지 계약, 거래 위험의 설명 미흡, 사후관리 미흡을 지적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은행과 사전 관리에 소홀한 당국의 책임이 드러난다.



그러면 키고계약을 체결한 기업들은 아무 문제가 없나? 여기서 키코계약의 전형적 사례를 다시 보자.

환차손의 위험을 관리, 즉 헤지를 해야 하는 수출기업에게 환율이 달러당 920에서 1000원 사이를 오르내리던 2008년 초만 하더라도 키고는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예컨대 약정금액 200만 달러를 달러당 약정가격 1000원, 하한(下限, Knock-Out)을 900원, 상한(上限, Knock-In)을 1100원으로 정하여 은행과 키고 계약을 체결할 경우, 환율이 1000원 아래로 내려가는 경우는 기업은 약정환율 1000원으로 달러를 매도할 수 있는 '풋옵션'을 행사하여 이익을 얻을 수 있고, 환율이 1000원 이상 상한인 1100원 이하로 오르면 그 환율로 매도하여 (이때 굳이 계약 은행에게 매도할 필요도 없다) 이익을 얻는다.



그러나 환율이 상한 1100원 이상 올라가는 경우, 기업은 은행의 '콜옵션'에 따라 약정금액의 2배, 즉 400만 달러를 시장에서 매입 은행에 약정가격에 매도해야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여기서의 매도해야하는 달러를 약정금액의 2배로 한 것은 환율이 상한 이상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그만큼 적다는 것을 고려 리버리지를 적용한 것이다.

많은 우리 중소기업들이 이러한 키코계약을 기꺼이 체결하였고 한동안 "재미를 좀 본" 것도 사실이다. 현재 그 기업들이 고객보호의무(은행이 기업 당사자까지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는지 의문이지만) 상 설명을 해태한 은행의 책임을 주장하기도 하고, 당시 환율이 "절대 1100원선을 넘지 않을 것"이라는 정부와 경제연구소들의 환율 전망을 탓하기도 한다.

그러나 목전에 이익 뒤에 존재하는 보다 큰 리스크에 눈감은 채 스스로 체결한 키코라는 계약 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구나 환차익을 보려고 수출실적을 크게 초과하여 약정금액을 정한 타조들도 있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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