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다양하고도 급격한 제도개혁 논의가 10년 이상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공사 중'이라는 푯말이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일국을 뒤흔들고 있는 제도개혁의 소용돌이에 비추어 본다면 200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내역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특히 정치학자, 여성 등등 노벨상에 어울리지 않는 얘깃거리를 넘어, 미국의 엘리너 오스트롬 교수의 수상내용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담론거리를 주고 있다.
이러한 수상의 이유를 하나씩 짚어보며 우리의 제도개혁 문제를 반추해보자. 우선 경제 지배구조란 단어가 아리송하다. 물건을 만들어내고 교환하는 방식을 지배하는 구조이다. 경제학자들은 경제 지배구조를 시장과 시장 외의 것으로 양분한다. 후자에는 통상 기업과 정부가 포함된다. 이러한 분류체계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전통경제학이나 공동수상자 윌리암슨이 내린 중요한 결론은 문제의 특성에 따라 시장, 기업, 정부가 선택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좌우 이념대립 속에 생겨난 시장 및 기업 대 정부 간의 대립구도는 공산권 붕괴이후 시장 및 기업에 대한 과도한 경도를 낳고 있고 우리에게서도 그러한 편향성이 발견된다. 이제는 이념대립에서 좀 더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겠다. 부국을 향한 우리의 여정이 아직은 많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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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롬의 업적은 무엇인가? 공유재산은 정부에 의해 규제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민영화하라는 기존의 사고방식, 또는 시장 아니면 정부라는 흑백 도그마에 도전한 것이다. 동시에 그는 공유재산을 내버려 두면 관리가 안된다는 패배주의적 도그마에도 도전한 것이다.
공유재산을 내버려 두어도 관리가 잘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일견 무책임해 보인다. 그러나 그는 구성원들 간의 자치활동에 의해 잘 관리된 수많은 사례를 수십년간 파헤치며 그 이유를 규명해왔다.
사실 이러한 도그마들은 우리에게서 멀지 않다. 외환위기 이후 전개되어온 수많은 급진적 제도개혁과 그로 인한 혼란들은 정부 아니면 시장, 또는 정부 아니면 민영화라는 양 극단을 넘나들면서 생겨난 결과물들이다.
패배주의적 도그마 역시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 박혀있다. 법규에 의해서 만들어졌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건 독점적 지대라는 공유재산을 관리하는 각종 협회나 단체에 대한 우리들의 부정적 인식이 그것이다.
우리의 자치단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서구 사회보다 깊고 또 그만한 이유도 있다. 이미 어용이나 관변단체라는 단어는 1980년대까지 시대의 상징어였고, 이후 자치단체에는 이익집단이나 좌파 또는 우파라는 수식어가 곧잘 붙어 다닌다.
지금의 혼란이나 오스트롬의 연구결과에 비추어보면 이들 자치단체도 이제 한국사회에서 적극적 역할을 하며 소임을 다해야 할 때가 왔다고 하겠다. 더 이상 정부에 모든 책임을 전가해서는 곤란하다.
예를 들어 외고문제 역시 정부에서 문제를 제기하기에 앞서 관련 자치회에서 스스로 풀어갔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물론 오스트롬이 잘 보여주듯이 각종 자치단체나 협회 스스로 자기 자신을 엄격하게 규율하는 환골탈태와 정부나 타집단의 이에 대한 존중이 이러한 대안에 있어 성공의 열쇠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