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MB에 부치지 않은 편지…반년만에 공개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09.10.07 14:29
글자크기
"이명박 대통령님, 오늘은 저와 관련한 일로 대통령께 청원을 드립니다."

2009년 4월19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대통령에게 보낼 편지 한 통을 썼다. 검찰 조사를 위해 같은 달 30일 대검 중수부에 출석하라는 통보를 받기 꼭 1주일 전이다. 친구이자 '집사'였던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긴급체포된 날이기도 하다.

청원 요지는 수사팀 교체였다. "지금까지 상황을 봐선 담당 수사팀이 사건을 공정하게 수사할 것이라 기대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노 전 대통령은 그러나 이 편지를 부치지 않았다. 외부에 공개하지도 않았다. 참모진이 노 전 대통령을 만류했다. 참모들은 "지난해 국가기록물 사건 때도 청와대에 전화, 공개편지 등 여러 경로로 입장을 전하고 청원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지 않았냐"고 했다.

그 당시 쓴 노 전 대통령의 편지가 6개월만에 공개됐다.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 기록위원회는 7일 노 전 대통령의 부치지 않은 편지와 함께 지난 5월23일 노 전 대통령 서거 전후, 추모 과정을 기록한 책 '내 마음 속 대통령-노무현, 서거와 추모의 기록 1'을 출간했다.



공개된 편지에는 노 전 대통령의 당시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노 전 대통령은 "그동안 수사팀이 너무 많은 사실과 범죄의 그림을 발표하거나 누설했고 피의사실을 공표하거나 누설해 왔다"며 "전혀 확인되지 않는 터무니없는 사실까지 발표하고 이는 불법행위"라고 적었다. 또 "검찰은 끝내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다른 사건이라도 만들어내려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미 모든 것을 상실했다" "권위도 신뢰도 더 이상 지켜야 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는 심경도 드러냈다.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피의사실 등을 공개하면서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여론재판을 받고 있는 데 대한 힘겨움이었다.

책에는 검찰 소환 조사 직전 작성한 '추가진술 준비'라는, 쓰다 만 글도 실려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메모에서 "결정적 증거라고 보도되고 있는 박연차 회장의 진술은 사실과 다르다"며 "검찰이 선입견을 갖고 오랫동안 진술을 유도하고 다듬어 만들어낸 것이란 확신을 갖고 있고 재판과정에서 밝혀낼 것"이라고 적었다.


또 "대통령을 하려고 한 것이 분수에 넘치는 욕심이었던 것 같다"며 "나는 야망이 있어 준비하고 단련해 왔지만 그들(친인척·측근)은 아무 준비가 없었고 아무 준비도 되지 않은 사람들을 위험한 권력의 세계로 내가 끌고 들어온 것"이라고 썼다.

이어 "남은 인생에서 해 보고 싶었던 모든 꿈을 접는다"며 "사법 절차의 결과가 어떻든 죽을 때까지 고개 숙이고 사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운영위원장은 "공개 여부를 두고 고민이 없진 않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하고 싶었던 말을 전하는 게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남은 사람들의 의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기록위원회는 '사람사는 세상' 홈페이지에 '함께 쓰는 내 마음속 대통령' 코너를 만들어 네티즌들과 함께 내용을 추가 정리할 계획이다. 정리된 내용은 내년 5월 노대통령 서거 1주기 때 '기록 2'로 나온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