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시장]경제회생의 길목에 선 평등권의 의미

김진한 변호사 기자 2009.09.07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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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시장]경제회생의 길목에 선 평등권의 의미


올해 초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셨고 바로 얼마 전 우리 국민들은 100일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2명의 전직 대통령들을 먼 곳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고인들에 대한 평가가 어떠하든, 대다수의 국민들은 고인들을 애도하였고 그분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삼삼오오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왔다.

심지어 일부 국민들은 스스로 분향소까지 지어가며 고인들을 추도했다. 또 어떤 이는 분향소에서 꽃을 올려놓고 마지막 인사를 드리기 위해 먼 거리를 한 걸음에 온 경우도 있고 고인들의 운구행렬 길목에서 목 놓아 울기도 했다.



정치권 역시 여·야 구별 없이 한 목소리로 고인들의 뜻을 받들어 상생을 통한 사회통합을 역설하였고 공중파를 비롯한 언론에서는 고인들의 생전 모습에서 서민들과 교감하는 장면을 국민들에게 방송하였다. 우리는 그 장면을 보고 또 한 번 그분들을 추억하고, 다시 한 번 새로운 감동을 했다.

이와 같이 국민들 스스로 고인들에게 감동하고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고인들의 생전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을 보면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낮추고 국민들의 고충을 이해하려고 하는 모습과, 그분들을 따르고 존경하는 모습이 담겨져 있다. 이것은 자신을 먼저 내세우지 아니하고,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여 '너'와 '나'가 아닌 '우리'라는 하나가 되는 모습인 것이다. 서로에 대해 '소통'하는 모습이 바로 하나 되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모습들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와 같은 소통의 자세가 현실적으로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방의 큰 상처보다는 자신의 조그마한 상처가 더 아프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적인 인간의 모습에 보다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최근에도 이런 모습을 많이 목격했다. 누구의 잘잘못이라고 따질 것 없이 쌍용차 사태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노사는 서로 각자의 입장이 다름을 이해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여 서로의 이견을 좁히는 것을 거부해 쌍용차의 회생은 보다 더 멀어지기만 하였으며 주변 협력업체들은 이로 인해 파산하거나 매우 심각한 경영위기에 이르기도 했다.

노자에 '合抱之木(합포지목)도 生於毫末(생어호말)하고, 九層之臺(구층지대)도 起於累土(기어루토)니라'란 말이 있다. 즉 한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도 털 끝 작은 싹에서 시작되고 9층이나 되는 높은 누대라도 한줌의 쌓아놓은 흙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뜻이다. 이 뜻과 같이 사회를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는 다수의 사람들의 기반 위에 존재하므로 자신들의 이익을 절대 양보하지 않으려는 입장을 지양하고 다수의 사람들은 '다수'라는 수적인 우세를 바탕으로 맹목적인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는 자세, 즉 서로의 입장의 차이를 인정하는 모습이, 동물에서 벗어나 이성이 있는 인간으로서 우리가 원하는 모습일 것이다.


'평등'이라는 것은 헌법의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서 2번째로 규정되어 있을 정도로 기본권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 의미는 획일적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상대적 평등, 즉 서로가 다름을 이해하고 이러한 다름에 대한 합리적 차별을 인정하는 그러한 평등을 의미한다.

IMF는 금융위기에서 가장 빨리 회복하는 나라 중에 하나로 우리나라를 꼽았고 현재 코스피 지수도 1600포인트를 전후하고 있다. 위기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서로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나와 네가 의견이 다름을 충분히 이해하여 대한민국에서 다시 한 번의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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