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신종플루, 유별난 공포감

머니투데이 이기형 바이오헬스부장 2009.09.04 09:54
글자크기
#며칠전 고대 구로병원에 한 할아버지의 전화가 걸려왔다.
"신종플루 백신 맞을 수 있나요."
"아직 백신이 없는데요."
"그러지 말고 좀 맞춰줘요. 부족해서 그런가. 나 건강이 안좋아서 맞아야 돼."
"그게 아니고 백신이 아직 없습니다."
"아가씨. 나 그 병원 단골이야. 잘 좀 해줘."

#서울시내 한 초등학교 교사는 개학을 했는데도 학교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방학동안 미국에 체류했기 때문이다. '7일동안 출근하지말라'는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방과후에는 동료 선생님과 만나 저녁도 먹고, 학생들과 만나 방학동안 못다한 얘기도 나눈다.



#얼마전 한 집에 모인 아줌마들의 수다다.
"우리 집은 신종플루 걱정이 없어. 시아주버님이 미국에서 의사를 하는데 여름휴가때 한국에 올때 타미플루를 가지고 오셨거든."
"그래 좋겠다. 가족중에 의사가 있어야 된다니까."
"요즘 거래가 된다던데. 구해놔야 되는거 아냐?"

#지난주 미국에 다녀온 한 후배의 얘기다.
"인천공항을 통해 들어오는데 좀 겁나더라구요. 마스크를 쓰고 방역복을 입은 검역요원들이 모든 승객들의 체온을 재는데 '뭐 일이 나긴 난 모양이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미국은 조용했거든요.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도 마스크를 쓴 사람은 일본 관광객으로 보이는 몇명 뿐이었구요. 공항에서도 체온을 재거나 하는 일은 없었어요. 미국에 체류중인 형네 가족도 신종플루에 대해 별 얘기가 없던데."



#국가신종인플루엔자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승철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쓸데없는 불안, 공포로 휴교하고 난리를 피우고 있다." "국제보건기구(WHO) 말 한마디를 하느님이 보낸 이메일 정도로 받아들이는 정부와 언론과 일부 학자들이 큰 문제다." "보통 감기와 구별이 안될 정도로 가볍게 넘어가고 있다. 별로 걱정안해도 된다."

박 위원장을 말을 100%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의 공포감은 과도한 듯 싶다. 하지만 어찌할 것인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믿으려 들지 않는 상황이니 찬찬히 준비하며 기다릴 수밖에. '미국산 쇠고기보다는 청산가리를 먹는 게 낫다'는 한 영화배우의 말을 진실처럼 믿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는 않다.

우리 국민들의 유전자속에 있는 유별난 공포감이 꼭 나쁜 것만도 아니다. 반작용도 에너지다. 이 공포심 덕분에 국내 처음으로 들어선 인플루엔자 백신공장이 생산 첫해부터 '대박'이 나게됐고, 정부와 몇년치 생산량까지 확정했다. 다른 업체들도 백신사업에 뛰어들겠다고 나섰다. 몇년전만해도 돈이 안된다며 거들떠보지 않던 분야다.


국내에 백신공장이 없었다면 정부는 얼마나 허둥대고, 국민들은 또 얼마나 공포에 떨었을까? 이를 생각해보면 척박한 토양에서도 연구개발에 힘써온 바이오제약산업이 있어 고마울 따름이다. 강제권이 발동되면 타미플루도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고, 새로운 대안무기로 떠오르는 항체치료제를 만들 기술과 공장을 국내에 가지고 있다.

유별난 공포심과 싸우지 말고, 바이오제약산업을 발전시키는 동력으로 사용하는 것이 지금 정부가 해야할 일이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