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약세를 함부로 말하지 말라"

주이환 KB투자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 2009.08.1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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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인사이트]대안부재로 달러위상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

"달러 약세를 함부로 말하지 말라"


위기론은 언제나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국내외 경제의 회복 신호가 완연해지자 이제 새로운 곳에서 위기 가능성을 찾는 목소리가 있다. 달러의 급격한 약세가 그것이다. 그러나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적어도 글로벌 경제가 완전히 정상화되기 전인 2010년까지 달러 약세를 함부로 말해서는 안된다.

가파른 달러 약세를 예견하는 주장은 미국의 국채발행 증가에 근거를 두고 있다. 발행물량 증가는 결국 해당 국채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달러화 자산의 대표가 미국채이므로 이는 당연히 달러 약세로 귀결된다. 실제로 미국채 잔액은 1/4분기에 전년동기비 28.4%나 증가하였다. 대규모 경기부양을 위해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국채물량 증가로 인해 달러 약세는 일면 불가피해 보이나, 역사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레이건 행정부가 경기부양과 구소련과의 군비경쟁을 위해 국채발행을 대폭 확대하였던 1980년대 초반에 달러는 오히려 강세를 지속하였다. 그 이유는 레이건 행정부가 달러 강세를 유도하는 태도를 취한 데다가, 다른 국가의 국채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국채 증가율은 미국을 능가하고 있었고, 영국도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국채 증가율이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었다. 일본도 비슷한 상황으로 추정된다.

한편 1998~2000년의 경우 미국채 물량이 감소하며 달러 강세가 전개된 것으로 나타난다. 당시 클린턴 행정부가 재정수지 흑자를 이끌어내며 국채 물량이 감소하였고 동시에 달러도 강세를 보였다. 그러나 같은 기간 다른 국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일본 국채는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었고, 독일도 1980년 대 수준은 아니지만 국채물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당시 달러 강세는 다른 국가의 국채 증가의 반사이익을 받은 것이다.



즉 국채물량 증가가 해당 통화의 약세로 귀결된다고 단언할 것이 아니라 다른 국가의 상황도 함께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당시 행정부의 환율 정책, 경기동향과 금리수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앞서 언급한 두 번의 시기에 미국의 금리수준이 다른 나라보다 높았던 것 또한 주목된다.

지금 미국의 국채 증가율이 다른 국가를 압도하는 것이 사실이다. 비슷한 수준을 보이는 것은 영국 정도이다. 그러나 향후 유럽국가와 일본의 국채 증가율도 높아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환율 전망에 있어 국채물량과 관계된 이슈는 의미가 퇴색될 것이다. 경기전망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성장률은 2009년 -2.5%, 2010년 2.1%로 전망되고 있다. 반면 유로권의 성장률 전망은 2009년 -4.3%, 2010년 0.5%이고 일본의 전망치는 2009년 -6.0%, 2010년 0.8%이다. 2009년 경기하강의 강도는 미국이 더 낮고 2010년 회복세는 미국이 더 높을 전망이다. 이런 마당에 달러 약세를 쉽게 말하긴 어렵다.


역사적으로 달러 약세가 급격하게 진행된 시기는 1986~88년, 그리고 2003~05년 두 차례이다. 주목할 대목은 이 때에는 달러를 대신할 강력한 대안 통화가 부각되었다는 것이다. 1986~88년에는 엔화가, 2003~05년에는 유로화가 대안 통화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현국면에서 엔화는 추가 강세를 전개하기 어렵고, 유로화는 강세 반전이 쉽지 않다.

세계 역사를 보면 한 왕조가 아무리 부패하고 무능하더라도 이를 대체할 신진세력이 부상하지 못하면 기존의 왕조가 무너지지 않았다. 경제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이 아무리 문제가 많고 달러가 미덥지 못하더라도, 이를 대신할 대안세력과 통화가 없다면 달러의 위상은 하루 아침에 격하되지 않을 것이다.



필자의 선입견일지는 모르나 지금 제기되고 있는 일방적 달러 약세론은 최근의 경기회복세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어 보인다. 경기회복세는 조만간 단명할 것이고 새로운 위기가 찾아올 것이란 전제 하에, 뭔가 불안감을 자극할 만한 대형 이슈를 찾고자 하는 욕구이다.

‘글로벌 달러 약세로 원/달러 환율이 과잉 급락할 것이고 이에 따라 한국 수출도 타격을 받을 것이다’ 이 얼마나 자극적인 내용인가! 그러나 여기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필자는 달러 약세 문제를 2011년에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 그 때쯤이면 세계 경제는 지금의 위기국면을 완전히 벗어나 정상적인 성장으로 복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 때에서 금번 위기를 어느 국가가 성공적으로 극복하였는지, 그 과정에서 수반된 부작용은 어디가 작은 지를 살펴 본 이후에, 그것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환율 전망을 하면 된다. 지금은 아니다.



단기 이슈에 집착하는 것은 경계해야 될 일이고 장기적인 관점을 유지하는 것은 항상 중요하다. 그러나 너무 장기적인 그리고 너무나 큰 주제에 집착하면 오히려 현실감을 상실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독일에서 활약 중인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씨의 이야기를 적고 싶다. 그녀의 20년 발레 인생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어느 기자가 다음과 같이 물었다.
‘다음 20년은 어떻게 살 것 같습니까?

그녀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저는 멀리 보지 못합니다. 오늘과 같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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