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시장]방송법과 시청자 선택권

송기호 변호사 2009.08.10 09:32
글자크기
[법과 시장]방송법과 시청자 선택권


지난달 22일 여당은 메이저 신문의 방송 진출을 허용하는 방송법을 처리했다. 신문사의 방송업 진출을 놓고 다양한 견해가 있다. 방송 진입 장벽을 낮추는 개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방송 산업을 완전 자유경쟁으로 운영하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에 처리된 방송법도 여전히 여러가지 방송 진입 제한 조항을 두고 있다.

그동안 방송법이 메이저 신문사의 방송 진출을 제한한 것은 언론 매체의 다양성과 관련이 있다. 동일한 조직이 신문과 방송 매체를 함께 지배하면 자칫 획일적 여론 조성으로 가기 쉽기 때문이다.



아침에 본 신문 사설을 텔레비전 저녁 뉴스에서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는 것은 사회의 건강에 좋지 않다. 이를 시청자들이 선택할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채널 선택권이 오히려 다양해지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메이저 신문의 방송업 진출은 결국 시청자의 선택권을 좁히게 된다.

이를테면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문제를 보자. 이는 그저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을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초중등 교육조차 부모의 계층에 따라 분리돼 버린다. 동네에서 자사고가 늘면 늘수록, 그래서 동네 공립학교가 갈수록 중산층 학부모의 기피대상이 되면 될수록, 결국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은 유명무실해진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과외를 시켜 동네 자사고에 집어넣어야 하는 것이다. 자립고에 실패해서 공립학교로 가는 것을 악몽으로 여기게 된다. 이를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이 실제로 다양해졌다고 말해도 좋은가.

우리 사회의 최고 법규인 헌법은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독일의 법학자 마운츠를 비롯해 많은 법률가들이 민주주의의 필수적 요소로 여론의 자유로운 형성 및 소수가 다수로 될 수 있는 기회의 보장을 든다. 그만큼 여론 및 언론매체의 다양성은 중요하다.

메이저 신문의 방송진출도 단지 아침에 본 신문 사설을 텔레비전 저녁 뉴스에서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는 문제로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메이저 신문이 방송 산업의 신규 진입자가 되면, 방송 산업을 지배하기 위해 여러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자신에 이로운 정책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신문을 이용할 것이다. 동일한 조직의 이익을 위하여 아침 신문과 저녁 뉴스가 동원된다는 것은 여론 다양성에 매우 나쁘다. 그들이 성공하면 할수록 시청자들은 다양한 여론을 접할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우리 헌법이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한다는 조항을 일부러 두고 있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메이저 신문들은 이 조항을 없애자고 하겠지만, 오히려 이 헌법 조항은 사실 경제적 강자에게 도움이 된다. 강자들이 자신들의 힘을 남용하여 더 많은 것을 차지하면 할수록, 약자들에게 돌아갈 몫은 줄어든다.



사람들의 처지에 따라 미디어법에 대해 여러 찬반론이 있겠지만, 여론 영향력이 동일한 조직에 과도하게 집중되는 것은 건강하지 않다. 방송법은 이처럼 한국 민주주의의 실질에 관한 중요한 문제이다. 충분히 토론하고 대화해서 처리해야 한다.

이토록 무리하게 빨리 처리해야 할 이유가 없다. 신문-방송 통합체를 적절하게 견제할 힘이 과연 지금의 우리 사회에 있는지부터 묻고 싶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