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B급 채권시장 죽이는 기관투자가

더벨 이도현 기자 2009.08.07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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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의 투자기피로 발행 어려워..자체 분석능력 키워야

이 기사는 08월06일(09:19)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1. 금호석유 (144,500원 ▲10,000 +7.43%)화학은 7월26일 만기도래하는 1600억원 어치의 회사채 상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6월부터 사전 수요조사(태핑)에 들어갔다. 하지만 상환기일까지 수요를 채우지 못해 결국 자체 보유현금으로 상환해야 했다. 이후 다시 발행을 추진했지만 규모는 500억원으로 대폭 줄었다.



금호석유화학 채권 수요가 낮은 이유에 대해'그룹 리스크'가 불거진 마당에 누가 투자를 하겠냐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기관투자가가 매입하지 않는, 'BBB'라는 낮은 신용등급 채권이라는 게 더 확실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리먼사태 이후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회사채 투자 입장에 큰 변화가 있었다고 본다. 과거에는 회사채 투자적격 기준이 신용등급 BBB- 이상이었지만 한 때 A급 이상만 매입할 정도로 리스크 관리에 나섰다.



최근에는 다소 상황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BBB급 회사채 투자제한은 풀리지 않고 있다. BBB+급 경우에도 선별적인 경우에 한해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위험을 안고 갈 기관투자가는 그리 많지 않다.

이 상황을 가장 안타깝게 여기는BBB급 기업들은 불만이 많다. 개별 기업마다 처한 상황도 다르고 산업별 특성도 고려해야 하는데 어떻게 BBB급과 BBB+급을 '칼로 무 자르듯' 일괄적으로 나누느냐는 것.

증권사 IB 관계자도 "IB 입장에서 보면 BBB급에서도 괜찮은 기업들이 많다"면서도 "기관들이 투자를 하지 않다 보니 증권사 내에서도 BBB급 기업 투자에 제한이 걸려 있어 그냥 지켜보고만 있다"고 전했다.


기관들이 이렇게 회사채 투자에 신용등급을 맹목적으로 활용하는 이유는 회사채 부도율에 대한 자체적인 판단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국내 금융시장에서 자체적으로 회사채를 분석할 수 있는 이들은 은행의 여신 심사역, 신용평가사의 애널리스트, 일부 증권사의 크레딧 애널리스트가 전부"라며 "능력이 없는 기관들은 신용등급에 의존하는 게 가장 편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최근 경제 위기에 대한 우려가 조금씩 씻겨 가면서 기관들의 투자 기준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기관들의 입장이 변할 것이라고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 과거의 아픈 경험을 잊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지난 2006년 비오이하이디스와 팬택 등 BBB-급 회사채가 부도가 났다. 이후 신용협동조합과 새마을금고 등 BBB급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던 기관들은 채권투자 제한등급을 BBB-에서 BBB+로 단숨에 2단계나 높였다. 이후 다른 기관들도 리스크 관리를 이유로 그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BBB급 회사채에 대한 투자 적격기준은 리먼 사태 전에 이미 조정된 셈이다. 그리고 기관들의'BBB-' 회사채에 대한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워지지 않았다.



기관투자를 담당하는 증권사 한 관계자는 "기관투자가들은 BBB급 회사채 투자에 대한 얘기를 꺼내면 아직도 비오이하이디스와 팬택을 예로 든다"며 "투자 제한을 완화하면 다시 기업들이 과도하게 재무 레버리지를 늘릴 테고 결국 피해가 부메랑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기관투자가들의 투자 기준은 당분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국내 회사채 시장에서 신용등급에 의한 양극화 현상이 고착화하고 있다는 의견은 구문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기관투자가와 BBB급 기업, 어느 쪽의 주장이 맞고 틀린 지를 명확히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각자의 입장 차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다만 투자가 입장에서는 자체적인 투자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분석능력을 갖출 필요가, 발행사 입장에서는 재무개선을 통해 투자에 대한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불식시키려는 자세는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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