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국회 '싸움의 기술'

머니투데이 백진엽 기자 2009.07.17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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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국회 '싸움의 기술'


"이렇게 며칠 지내면 여야간 우의가 돈독해지겠어요."

국회 개원 사상 초유의 본회의장 여야 동시 점거에 들어간 이틀째, 국회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비웃음섞인 목소리다. 좀더 자극적인 것을 찾는 최근 세태를 반영한 것인지, 국회는 점점 자극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막말은 기본이고, 얼마 전에는 치고 받는 폭력극을 찍더니, 이번 소재는 '동거'다.

정당은 기본적으로 싸움을 통해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것이 목표인 집단이다. 따라서 정당끼리 싸움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오히려 싸우지 않는 정당은 정당으로의 가치가 상실된다.



하지만 싸움에도 기술이 있고 예의가 있어야 한다. 싸우는 목적이 정당을 지지해 준 국민들을 수긍케 해야 하고, 국가의 부가가치(유형이든 무형이든)가 증가하는 생산적인 싸움이 돼야 한다. 그러나 최근 여야는 모든 것을 무시하고 단지 싸움 그 자체를 목적으로, 다시는 상대방을 보지 않을 것처럼 사생결단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정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상대방을 인정하고, 최소한의 신뢰가 있어야 한다. 저쪽에서 말하는 것은 아예 믿을 수 없다는 전제로 시작하면 이뤄지는 것은 전혀 없다.



지금 국회가 그 꼴이다. 한나라당이 미디어법 직권상정을 할까봐 본회의장을 떠나지 못하는 민주당이나, 민주당이 의장석까지 점거할까봐 옆자리에서 잠을 청하는 한나라당이나 '오십보 백보'다.

여기에 상대방을 자극하는 막말까지 더해지면서 이젠 정쟁이 아닌 감정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상대 정당의 발언을 인용하자면 '빨갱이의 꼭두각시'와 '대통령의 심부름꾼'이 한 이불을 덮고 동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치고받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권투조차 상대방의 하체를 공격하면 안된다는 최소한의 룰이 있다. 하지만 지금 국회는 기술도 룰도 없는 시장판 막싸움과 다름없다.

'사람'(人)과 '말'(言)이 더해지면 '믿음'(信)이 된다. 하지만 서울 여의도 한 켠에서는 사람과 말이 합쳐져 새로운 돌연변이가 태어나고 있다. '불신'(不信)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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