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 단기부동자금 유감

최희갑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 2009.06.25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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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시평] 단기부동자금 유감


당초 우려하던 최악의 경기상황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걱정거리들이 생겨나고 있다. 부동산과 증권 시장의 회복 속에서 이른바 '사상 최고수준의 부동자금'이라는 단어가 다시 널리 회자되고 있다.

서민들로서는 비정규직 해고나 임금동결 속에서 근로소득이나마 지키는 것에 만족해야 할 상황에서 자산시장의 불안은 또 한 차례의 박탈감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말의 외환위기가 많은 생소한 단어를 낳았지만 부동자금이라는 단어만큼 끊임없이 서민들이나 정책당국을 괴롭히고 있는 단어는 없는 듯하다. 경제학자들에게도 이 단어는 난감한 용어이다. 적절하지 않은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워낙 널리 사용되다보니 이제는 잘못을 지적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온라인 사전들이나 경제용어 사전에는 이제 부동자금이라는 단어가 버젓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부동자금(浮動資金)을 '일정한 자산으로 붙박여 있지 않고, 투기적 이익을 얻기 위하여 시장에 유동하고 있는 대기성(待機性) 자금'으로 정의한다. 아울러 언론에서는 구체적 측정방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즉, 부동자금은 금융기관 예금 중 6개월 미만의 상품에 예치된 자금으로 측정하면 된다는 것이다.



경제학에 약간의 안목을 갖춘 사람이라면 이 단어가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몇 가지만 보자. 통화나 유동성의 정의와 관련된 오래된 논란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형태의 금융자산은 일정한 이자소득이나 자본소득을 희생하면 어렵지 않게 현금으로 전환할 수 있다.

특히 투기적 이익이라는 목표에 부합한다면 정기예금을 현금화하는데 어려움을 가질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만기와 상관없이 모든 금융자산은 부동자금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투기적 이익을 얻기 위해'라는 용어이다. 정의 그대로라면 6개월 미만의 금융상품에 예치된 자금은 투기적 이익을 얻기 위하여 예치된 것이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당좌예금과 보통예금은 기업과 가계가 매일 결제할 목적으로 보유하는 계좌이며, 또 지급기일에 약간의 여유가 있다면 조금이나마 이자를 받을 요량으로 가계, 기업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조차도 널리 사용하는 MMDA, MMF도 이에 포함된다.

더욱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맥락에서 볼 때 단기금융상품에 예치된 금액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 중 상당액은 위험을 적극 기피하기 위함이다. 외환위기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 중의 하나는 위기 상황에서 보유한 현금이 생명줄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자금을 투기적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이라 한다면 기업이 직면한 금융위기의 현실을 외면한 것이다. 케인즈가 말한 예비적 동기에 대한 통화 수요가 증가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 자금이 모두 순수한(?) 목적에서 비롯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 자금이 모두 부동산이나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갈 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일찍이 케인즈가 지적한 투기적 동기의 유동성 수요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은 금리가 낮아질 대로 낮아진 상황에 놓여있고 앞으로 이자율이 전 세계적으로 상승하리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기가 된 장기예적금이나 장기채권 상환금액을 저금리의 장기금융상품에 당장 가입하는 것은 경솔한 행동일 것이다. 현명한 장기저축자라면 금리가 충분히 오르기를 기다리는 편이 좋다는 것이다. 이자율 상승을 염두에 둔 투기적 통화수요라 부를 수 있겠지만, 그리 투기적인 것은 아니다.

과도한 혼란과 불안을 야기하는 부동자금이라는 용어는 이제 그만 유통되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관련된 통계의 작성도 이제는 멈추었으면 한다. 부동자금이라는 용어가 담고 싶은 의미를 담고 싶다면 통화 또는 유동성이라는 단어와 통계를 사용하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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