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관객 눈물적신 정명훈의 라트라비아타

머니투데이 오수현 기자 2009.06.22 16:06
글자크기

[서울시향과 함께한 머투 여름음악회] 세계적성악가 감동무대

후텁지근한 여름밤, 비올레타의 비련에 3000여 관객도 함께 울고 함께 탄식했다.

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정명훈-서울시향과 함께하는 2009 머니투데이 여름음악회- 라트라비아타 콘서트버전'은 오페라의 완벽한 연출대신 오케스트라와 아리아에 집중하는 무대만으로 관객에게 놀라운 감동을 선사했다.

↑지난 21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2009 머니투데이 여름음악회'가 열렸다. 정명훈이 지휘하고 서울시향이 연주한 베르디의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콘서트 버전. ⓒ이명근 기자↑지난 21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2009 머니투데이 여름음악회'가 열렸다. 정명훈이 지휘하고 서울시향이 연주한 베르디의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콘서트 버전. ⓒ이명근 기자


◇ 정명훈의 유려한 지휘... 서울시향과 물오른 호흡



정명훈이 이끄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요즘 떠오르는 러시아 출신 성악가들이 함께한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콘서트 버전은 거품을 제거한, 그래서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흔치 않은 연주회였다.

특히 지난 1948년 '춘희'라는 제목으로 '라 트라비아타'가 국내에 처음 선보인 이래 콘서트 버전으로 연주되긴 이날 연주회가 처음이었다. 정식 오페라와 달리 간혹 중요하지 않은 장면은 생략되기도 했지만, 가수들의 아리아와 오케스트라의 연주의 완성도는 그 어느 무대보다 높았다.



오페라를 반드시 화려한 무대장치나 의상과 함께 즐겨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때로 아름다운 아리아만으로도 그 감동이 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무대였다.

지난 1989년부터 5년간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음악감독을 지내며 오페라 지휘에도 일가견이 있는 정명훈은 이날 연주회에서 오케스트라와 가수들 간 밸런스를 조율하며 성악가들의 노래를 살리는데 주력했다.

정명훈과 4년째 호흡을 맞춰온 서울시향도 이날 지휘자와의 물오른 호흡을 과시했다. 정명훈은 과장되지 않은 최소한의 몸짓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정명훈-서울시향과 함께한 베르디의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콘서트 버전.  알프레도(다닐 슈토다, 사진 왼쪽)와 비올레타(마리나 포플라프스카야)의 이중창 ⓒ 이명근 기자↑정명훈-서울시향과 함께한 베르디의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콘서트 버전. 알프레도(다닐 슈토다, 사진 왼쪽)와 비올레타(마리나 포플라프스카야)의 이중창 ⓒ 이명근 기자
◇ 포플라프스카야의 비올레타 객석을 전율시키다

여주인공 비올레타 역을 맡은 소프라노 마리나 포플라프스카야는 현재 최고의 비올레타로 꼽히는 안젤라 게오르규, 안나 네트렙코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꼽히는 가수다.



그는 이날 무대에서 비련의 여주인공의 내면 변화를 노래와 표정만으로 압도적으로 표현해 냈다. 특히 오케스트라의 두터운 사운드를 뚫고 나오는 성량과 음색은 관객에게 전율과 감동을 안겨주기에 손색이 없었다.

가슴 저리는 처연함과 활화산 같은 파워를 동시에 보여준 포플라프스카야의 비올레타는 오페라의 극적인 무대장치 없이도 음악만으로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고 눈물을 훔치게 만들었다. 세계정상급 소프라노의 폭발적 무대를 눈앞에서 보는 것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잊을 수 없는 행복한 경험이었다.

영국 로열오페라의 2007년 '돈 조반니'와 2008년 '돈 카를로'에서 각각 네트렙코와 게오르규 대신 출연했다가 스타로 떠오른 그는 이번 시즌 로스앤젤레스 오페라에서 '라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로 격찬을 받았다.



알프레도 역을 맡은 다닐 슈토다는 파워는 조금 약하지만 낭만적인 음색의 소유자였다. 순진하면서도 정열적인 사랑의 소유자인 알프레도를 섬세하면서도 우수에 젖은 음색으로 매력적으로 표현해 냈다.

↑정명훈-서울시향과 함께한 베르디의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콘서트 버전. 비올레타(마리나 포플라프스카야, 사진 왼쪽)와 제르몽(바실리 게렐로)의 이중창 ⓒ 이명근 기자↑정명훈-서울시향과 함께한 베르디의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콘서트 버전. 비올레타(마리나 포플라프스카야, 사진 왼쪽)와 제르몽(바실리 게렐로)의 이중창 ⓒ 이명근 기자
게르기예프가 총애하는 가수 바실리 게렐로는 베르디 오페라의 바리톤이 갖춰야 할 진중함과 역동성을 가장 잘 소화하는 가수로 평가 받고 있다. 제르몽 역을 맡은 이번 무대에서 그는 그런 평가가 허언이 아님을 입증해보였다. 자연스러운 연기와 파워풀한 음색으로 남자 주인공 알프레도 보다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밖에 다른 가수들의 연기와 노래도 훌륭했다. 일반 오페라에서는 무대 아래 오케스트라가 위치하지만, 이날 콘서트 버전에선 오케스트라가 가수들과 같은 무대에 섰다. 그러나 무대에 선 7명의 가수들은 오케스트라에 압도당하지 않고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가볍게 목소리를 얹은 채, 때론 강력한 성량과 음색으로 오케스트라를 따돌리며 원숙한 연주를 선보였다.



↑정명훈-서울시향과 함께한 베르디의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콘서트 버전.  왼쪽부터 알프레도(다닐 슈토다), 지휘자 정명훈, 제르몽(바실리 게렐로),  비올레타(마리나 포플라프스카야) ⓒ 이명근 기자↑정명훈-서울시향과 함께한 베르디의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콘서트 버전. 왼쪽부터 알프레도(다닐 슈토다), 지휘자 정명훈, 제르몽(바실리 게렐로), 비올레타(마리나 포플라프스카야) ⓒ 이명근 기자
◇ '귀여운 여인' 줄리아 로버츠처럼...

'축배의 노래' '아, 그이였던가' '파리를 떠나서' 등 귀에 익은 주옥 같은 노래들을 풀코스로 들을 수 있었던 이번 무대는 세계적 지휘자와 세계적 수준의 성악가가 만나 이끌어내는 오페라의 감동이 어떤 것인지 맛보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가사도 모르면서 눈물을 훌쩍거리며 본 바로 그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환호와 열광, 기립박수 속에 막을 내린 이날 무대, 세종문화회관을 찾은 3000여 관객들도 다들 줄리아 로버츠와 같은 심정으로 광화문의 늦은 밤을 떠나지 않았을까. 아직도 포플라프스카야의 애절한 아리아가 귓전을 맴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