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전직 대통령에 대한 남은 예우

머니투데이 김지민 기자 2009.05.29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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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봉하마을 어귀부터 죽 늘어져 펄럭이는 만장과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들이 만들어 나뭇가지 사이에 달아놓은 플래카드, 그리고 노무현 전대통령의 분향소를 찾은 사람들이 가슴에 담긴 한 마디를 기록한 방명록. 이 속에서 눈에 가장 많이 띄는 문장이다.

부모나 형제가 세상을 뜬 것도 아닌데, 살아가면서 단 한번 만난 적도 없는데 사람들은 노 전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남도 한 자락에 놓인 작은 마을, 봉하를 찾는다. 어렵사리 일터에 휴가를 내고, 갓난쟁이 아이를 등에 둘러업고, 친구들끼리 팔짱을 끼고 봉하를 찾아든다.



전국 각지에서 먼길 마다 않고 찾아온 사람들의 마음에는 노 전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가득하다. 하나같이 미안한 표정으로 "죄송하다,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되뇐다.

노 전대통령이 세상과 이별을 고한 날부터 봉하를 지키고 있는 기자의 마음엔 '노 전대통령은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라는 물음이 한시도 가시질 않았다. 어떤 존재였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의 발길을 붙잡는가.



그러다 머리 속에 한 단어가 스쳤다. 노 전대통령을 수식하는 한 단어, '인간'이었다. 한국 주류에 끼지 못하는 보잘 것 없는 정치이력으로 대통령이라는 국가 수장에 오른 사람, 그러나 권력자연하지 않고 모든 권력을 버려 낮은 사람 편에 서려 한 사람. 그 '인간' 노무현을 마음에 담고 사람들은 성지인 양 이 봉하를 찾는 것이 아닐까.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적지 않은 사람이 "노무현마저 그럴 줄은 몰랐다"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 사람들도 이제는 통한의 눈물을 흘린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이라는 수식어를 붙여가며 노 전대통령과 가족들을 소환한 검찰, 그리고 그 사실을 거르지 않고 써대며 노 전대통령과 가족들을 몰아붙인 언론을 막아내지 못했다고 자책한다.

불행히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제대로 갖출 기회도 없이 노 전대통령은 떠났다. 하지만 늦게나마 전직 대통령에 대한 마지막 예우를 진정으로 갖추기를 원한다. 그리고 예우를 갖추는 길은 '인간' 노무현이 생전에 그토록 지키고자 한 가치를 지켜내는 것이다. 소통과 화합으로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던 꿈을 지켜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노 전대통령에 대한 살아 있는 우리의 마지막 예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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