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라마로 본 노 前 대통령의 일생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2009.05.23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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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 인권변호사로 유명세... 정계 입문뒤 청문회 스타로

1. 출생과 유년시절

노무현은 1946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3남2녀 가운데 막내로 출생했다. 이 마을에서 중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살았으며 중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장학금을 받기 위해 부산상고에 진학했다.
↑부산상고 3학년 시절 해운대에서.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노무현 전 대통령↑부산상고 3학년 시절 해운대에서.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노무현 전 대통령


2. 사법고시 합격과 인권 변호사

1975년 제 17회 사법고시 합격, 1977년 대전지방법원 판사 임용 뒤 7개월만에 변호사 개업. 1981년 부림사건 이후 인권변호사로 활약했다. 이후 86년부터는 변호사 업무를 거의 중지하다 시피하고 운동에 전념해 87년 민주쟁취국민운동 부산본부의 상임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며 '6월항쟁'의 주역이 됐다.
↑87년 민주쟁취국민운동 부산본부의 상임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거리에서 시위하는 노전대통령↑87년 민주쟁취국민운동 부산본부의 상임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거리에서 시위하는 노전대통령
↑1987년 8월 거제 대우조선 파업현장에서 최루탄에 맞아 숨진 노동자 이석규씨의 사체부검과 임금협상을 도와주다  `3자개입' 금지 혐의로 구속된 노 전 대통령↑1987년 8월 거제 대우조선 파업현장에서 최루탄에 맞아 숨진 노동자 이석규씨의 사체부검과 임금협상을 도와주다 `3자개입' 금지 혐의로 구속된 노 전 대통령
3. 정치 입문 및 '청문회 스타'



1988년 노무현은 통일민주당의 공천 제안을 받고 부산 동구에 출마, 제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5공비리조사특위’의 청문회 활동에서 정주영, 장세동 씨
등에 대한 증인 신문에서 일약 청문회 스타로 부각됐다. 이후 1990년 1월의 3당 합당에 반대하여 노무현은 당 잔류를 선언하면서, 민주당 창당의 주역이 됐다.
↑3당 합당에 반대하며 당 잔류를 선언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3당 합당에 반대하며 당 잔류를 선언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4. 대통령 당선

2002년 3월9일 제주도를 시작으로 전국 16개 시도에서 치러진 국민참여 경선을 노 전 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당선된다. 이후 희망돼지 저금통, 휴대폰모금, 희망티켓 등 새로운 형태의 모금 행사와 미디어선거, 인터넷선거 등 국민참여형 선거운동을 통해 48.9%의 지지를 얻어 2002년 제 16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제 1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노 전 대통령↑제 1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노 전 대통령
5. '개혁' 대통령, 봉화마을로



노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관행과 권위 타파와 개혁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재임 초 2004년에는 선거 중립 의무 위반 등 이유로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기도 했다. 대통령 퇴임 후 노 전 대통령은 고향인 봉하마을로 돌아가 지역 발전 구상을 세웠다. 하지만 올해 4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600만달러 이상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의 한 도로변에서 잡초를 치던 중 신발끈을 묶고 있다.↑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의 한 도로변에서 잡초를 치던 중 신발끈을 묶고 있다.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기 전 봉화 마을의 집 앞에서 노 전 대통령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기 전 봉화 마을의 집 앞에서 노 전 대통령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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