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시장]짝퉁 '워낭소리'와 '카피세프트'

정기동 변호사 2009.05.1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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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시장]짝퉁 '워낭소리'와 '카피세프트'


지난 3월26일 영화배우 안성기·박중훈씨와 영화 '워낭소리' 제작자인 고영재 PD 등이 국회 문방위 고흥길 위원장을 만나 공개적으로 '뇌물'을 전달했다. 바로 짝퉁 DVD '워낭소리'였다.

4월 국회에서 저작권법 개정안 통과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거의 30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이 찾은 독립 저예산 영화 '워낭소리'는 올해 한국영화가 거둔 최고의 예술적, 산업적 성취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에서 힘들여 만든 독립영화라는 사실도 이 영화가 이뤄낸 아름다운 예술적 성취도 '카피 세프트(copy theft)'의 전사들에게는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았다. '워낭소리'의 불법 복제물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대량 유통되었던 것이다.

저작물에 관한 태도에도 '좌우'가 있다. 저작물에 관한 권리를 가리키는 '카피라이트(copyright)'에 빗댄 '카피레프트(copyleft)'는 저작권자의 권리의 독점화에 반대하여 누구나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저작물에 대한 권리의 공유를 지향한다.



카피레프트는 저작권자의 권리 보호에 치우쳐 있는 기존 제도의 변화를 추구하지만 남의 저작물을 내 마음대로 이용하겠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건 공유의 실천이 아니라 그냥 도둑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의 저작물을 마음대로 유포하고 심지어는 이익을 챙기는 짓에는 라이트도 레프트도 아닌 세프트(theft, 도둑질)라는 이름이 걸맞다.

국회는 지난 4월1일 온라인상에서 불법 복제물의 삭제명령을 3회 이상 받은 게시판이 저작권의 이용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6개월 이내의 게시판 서비스의 정지를 명할 수 있도록 하는 저작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인터넷기업과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인터넷상의 정보유통을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개방과 참여의 정신으로 정보와 의견의 자유로운 소통을 추구하는 인터넷 게시판의 본질에 비춰 저작권자의 요청이 없이도 정부에 일방적인 게시판 통제수단을 제공하는 개정법이 불법복제를 막는 항구적인 수단이 될 수도 없고 그 잠재적 위험성을 부인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공감이 간다.


그러나 그 현실적·한시적 필요성까지도 전부 부정하기에는 타인의 지적 창작물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는 우려할 만한 대목이 없지 않다. 나아가 게시판 서비스의 정지는 '상업적 이익이나 이용편의를 제공하는 게시판'에 한정되고 '저작권 이용질서의 심각한 훼손'이라는 객관적 요건이 추가되어 있고 개정법의 위험성에 대한 각성이 살아있다면 '아고라폐지법'으로 변질되는 것은 쉽지 않을 터이다.

궁극적으로는 게시판 이용자에 대한 조치는 온라인서비스 사업자에게 맡기고 그 결과도 사업자가 책임지게 하는 것이 타당함은 물론이다.



하버드대학은 2006년 가을 학생들의 논문의 표절 여부를 가려내는 소프트웨어를 도입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에서도 표절이 많다는 사실에 안도할 것이 아니라 타인의 지적 창작물에 대한 엄격한 태도를 읽어 내야 마땅하리라.

카피라이트에 의해 저작권은 보호되어야 하고 카피레프트에 의해 공유의 정신은 확산되어야 한다. 그 출발은 타인의 지적 창작물에 대한 존중이다. 그러나 타인의 저작물을 마음대로 쓰고 돈까지 벌려는 카피 세프트는 도둑질일 뿐 아니라 문화의 재생산의 토대를 망가뜨리는 반사회적 파괴행위이다. '워낭소리'가 DVD로 출시돼 다시 한 번 그 따뜻함에 빠져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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