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 전기료 결국 서민에게 독으로 돌아온다

머니투데이 최명용 기자 2009.05.14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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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강국 코리아 1부] 물 쓰듯 에너지 펑펑 쓰는 한국 3회

지식경제부가 전기요금과 천연가스 요금을 이르면 올 상반기 중에 인상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에너지 요금 인상은 에너지 낭비를 가장 빠르게 또 효과적으로 줄이는 방법이다. 세계 각국은 국제 유가 등 에너지 자원의 가격 상승에 맞춰 전기요금을 올리는 한편 에너지 효율 제품을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등 에너지 절감 노력을 벌이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개인 소비자들을 상대로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캠페인만 벌였을 뿐 요금체제 개선이나 적정 요금 유지 등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에너지 가격을 낮게 유지하면 산업계의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논리에 막혀 에너지 요금체제 개선은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문제는 원가에도 못 미치는 낮은 에너지 요금이 에너지 낭비를 불러와 국가 전체적으로 큰 손실을 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곡된 전기요금 체계와 구조는 오히려 경제 발전에 해를 끼쳐 국민들에게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온다.

◇남아공, 전력 수출국에서 정전 국가로=세계에서 가장 전기요금이 싼 곳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몇해전 NUS 컨설팅그룹이 세계 각국의 전기요금을 조사해 비교한 결과 남아공의 전기요금은 kWh당 평균 3.71센트로 세계 최저를 기록했다. 전기요금이 가장 비싼 이탈리아에 비해 1/4 수준이었다.



남아공은 석탄 자원이 많아 전력을 풍부하게 생산했다. 한때는 전기가 남아 돌아 주변국에 전기를 거의 공짜로 나눠주기도 했다. 그러나 1994년 흑인 정권이 들어선 뒤 저소득층을 배려하기 위한 전기요금 억제 정책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전기요금이 동결되면서 투자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발전소 증설이 거의 중단됐고 송배전 설비 투자 제 때 이뤄지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이 발전하며 전력 수요가 늘자 남아공의 전력 사정이 급격히 악화됐다. 결국 2007년말부터 강제로 특정 시간에 특정 지역의 전기를 끊는 '로드 셰딩(Load shedding)' 조치가 이뤄졌다. 부유층은 단전 조치가 내려지는데 대비해 개인용 발전 설비을 갖췄다. 결국 '로드 셰딩'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흑인 저소득층에 집중됐다.

남아공은 뒤늦게 전력 시설 확충과 전력요금 조정에 나섰다. 남아공 전력회사인 에스콤(Eskom)은 2015~2020년까지 현재 4만MW 수준의 발전 용량을 2배인 8만MW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전기요금도 올리기 시작했다. 2007년 12월에 14.2% 올린데 이어 지난해 7월에도 13.3%의 요금 인상을 단행했다. 남아공 정부는 향후 3년간 20~25% 정도의 요금을 추가로 올릴 계획이다. 이와 함께 △태양열 온수 프로젝트 △소형 형광램프 설치 △스마트 미터기 설치 등 에너지 절약 상품을 널리 사용토록 권장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정전 사태도 요금구조 탓=세계 제일의 선진국으로 손꼽히는 미국도 전력 수급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었다. 적정 수준의 전기요금을 유지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경쟁체제를 도입, 전기요금을 낮춘다는 복안으로 전기공급을 민간기업에 맡겼다. PG&E, SCE 등이 캘리포니아 지역 전력 공급을 담당하는 대표적인 민간기업이다.

이들 기업은 도매시장에서 전력을 매입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형태로 영업했다. 도매가격이 낮게 유지되면서 이들 전기 공급업체들은 발전 설비를 매각하고 전력 유통에만 집중했다.

처음 몇년간은 낮은 도매 가격 덕에 이익을 많이 남겼다. 그러나 2000년에 들어서면서 강수량이 줄고 가스요금이 올라가면서 전력 도매가격이 급격히 올랐다. 2000년 말엔 2년 전에 비해 30배 높은 수준까지 전력 도매가격이 급등했다. 반면 전기 소매가격은 주정부의 규제에 막혀 인상이 제한됐다.



PG&E와 SCE 등은 심각한 경영위기 속에서 주정부에 요금 인상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이들 전력회사는 2001년 1월 파산을 선언하며 전기 공급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이 결과 그 해 1월과 3월, 5월 등에 연이어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고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결국 비상사태까지 선언해야 했다. 이어 주정부가 직접 전기를 구매해 나눠주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싼 전기료 결국 서민에게 독으로 돌아온다


◇EU, 풍부해도 전력 아낀다=반면 유럽은 전기요금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해 전기 생산량이 풍부하면서도 에너지를 아끼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프랑스와 벨기에 등이 대표적이다.

프랑스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투자를 계속해 전력 사정이 상당히 양호하다. 프랑스는 현재 59기의 원자력 발전을 운영하고 있으며 전체 전력 생산의 78%를 원자력이 담당하고 있다. 프랑스의 전기요금은 국제 유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기 때문에 안정적인 전기 생산이 가능하다. 프랑스 전력회사인 EDF는 프랑스 뿐 아니라 영국과 이탈리아 등에도 진출해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프랑스의 전기요금은 한국에 비해 50% 정도 비싸다. 평균 공급 가격은 kWh당 0.08유로(한화 115원, 07년 기준)에 달한다. 한국의 전기요금은 kWh당 77.85원 수준이다. 이처럼 에너지 요금이 높기 때문에 LED조명 등 절전용품 판매가 높다는게 현지의 전언이다.



이웃한 벨기에도 풍부한 전력을 자랑한다. 유럽 지역에서 거의 유일하게 밤새도록 고속도로 변의 가로등을 켜 놓는 곳이 벨기에다. 벨기에는 독특한 요금체계로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있다.

벨기에는 연간 단위로 요금을 책정한다. 올해 내는 전기요금은 지난해 전기사용량을 기초로 매겨진다. 지난해 월 평균 20만원어치의 전기를 사용했다면 올해는 월 20만원 요금을 낸다. 올해 전기사용을 줄여 15만원어치만 썼다면 이듬해엔 15만원의 요금을 내면 된다.

지난해 더 낸 전기요금도 추산해 돌려준다. 지난해 실제 사용량은 월 15만원 어치인데 전기요금 납부액은 20만원이었다면 월 5만원을 덜 쓴셈이다. 이 경우 차액인 5만원을 돌려받아 올해 납부할 전기요금은 10만원으로 내려간다. 에너지를 절약한 만큼 혜택이 눈에 띄게 돌아오니 에너지를 함부로 쓰지 않으려 한다.



결국 서민을 위하고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 요금을 낮게 유지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적절하고 효율적인 요금 체계, 원가를 반영하는 요금 체계로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면서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 체제를 갖추는데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을 마련하는 방안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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