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총재 "과잉유동성,우려상황은 아냐"

머니투데이 도병욱 기자 2009.05.12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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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답]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12일 현재 환율 수준에 대해 "가격 변수가 움직일 때는 거기에 따른 이유가 있다"며 "시장의 흐름에 따라 가격 변수가 움직이도록 보고 있는 것이 정책당국으로서의 바른 태도"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날 5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최근 환율 하락 속도와 수준에 대해 묻는 질문에 "(가격 변수가) 경제 불균형을 누적시켜 문제를 가져올 상황이면 행동을 취해야겠지만, 지금 상황이 그 정도는 아니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지난 3월부터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면서 외환당국의 개입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개입할 의향이 없다"는 속내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금융계에서는 해석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과잉 유동성 문제에 대해서는 "단기성 자금이 많아진 것은 틀림없다"면서도 "단기 유동성이 아직은 크게 문제를 일으켜 당장 대책을 세워야 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고 답했다.



이 총재는 "단기성 자금이 먼저 유통되고 이후 자산이나 상품으로 번질 수도 있고, 거래가 활발해지니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단기자금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800조원이 과잉 유동성"(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단기 유동성이) 부메랑으로 작용할 수 있다"(김종창 금융감독원장) 등의 발언과는 차이가 있는 해석이다.

◇ 다음은 이 총재의 모두발언


오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통화정책 목표로 삼는 기준금리를 현재의 연 2% 수준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실물경제 쪽을 보면 국내 경기에서 소비 수요도 부진하고 설비투자 감소폭도 상당히 크다. 그렇지만 수출은 올해 들어 더 크게 감소하지 않고 매월 비슷한 수출실적이 유지되고 있다. 그 동안 재정이나 통화정책 쪽에서 적극적인 경기부양정책을 써왔는데, 이런 것이 일부 건설활동이나 소비수요 감소를 막아주는 데 효과를 일으켰다고 본다. 여러 지표를 보더라도 경기 하락 속도가 완만해졌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고, 기업이나 가계를 대상으로 하는 심리지표 등도 호전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물가 쪽을 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최근 몇 달 동안 현저하게 떨어져 지난 4월에는 전년동월대비 3.6% 상승한 것으로 나왔다. 국제 원자재 가격이 지난해 하반기 이후 안정을 찾아가고 있고, 경제활동 부진으로 수요 쪽에서 오는 물가 압력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금융시장을 보면 최근 금융시장 지표가 많이 좋아졌다. 환율도 많이 떨어졌고, 주가도 많이 올랐다. 한편으로는 대기업이 자본을 조달하는 회사채 시장에서도 회사채 발행 호조를 보이고 있다. 은행 대출 쪽에서는 주로 정부의 보증지원에 의존하고 있지만 중소기업 대출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등 금융시장 상황은 전반적으로 개선됐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부분에 대해 신용이 공급되는 것이 아직 제 위치를 못 찾고 있다. 중기대출 하고 있지만 신용보증에 의해 일어나는 대출이 많고, 회사채 발행 된다하더라도 B급 이하 회사채에 대해서는 발행금리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한편으로는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금이 단기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단기 유동성 지표 증가율이 전체 유동성 지표 증가율보다 빠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우리 경제를 전망해보면 한두달 전보다 나빠진 것은 별로 없다. 그렇다고해서 현저하게 개선된 것도 없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 시장의 경기 전망이 그리 좋지 않다. 중국에 대해서는 몇 달 전의 전망보다는 조금 나아지고 있다는 견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우리나라 수출 여건이 그렇게 좋아졌다고 볼 수는 없다. 내수쪽에서도 고용이 아직도 감소하고 있는 상태고, 경기가 나쁘기 때문에 임금 상승도 기대할 수 없어 소비 수요가 살아나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설비투자도 아직까지 뚜렷하게 좋아지는 기미가 없다. 그래서 지금 경제 상황은 경기 후퇴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현저하게 살아난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당분간은 지속될 것이다. 말하자면 아직은 불안요소가 상당히 많다고 요약할 수 있다.



물가에서 큰 고비는 지났다고 본다. 환율이 그 동안 상당히 떨어지고 수요 쪽 압력이 금방 강해질 것 같지는 않다. 비용과 수요 양쪽에서 물가가 안정될 전망이다. 특히 지난해 2분기까지 물가 상승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5월부터 당분간 물가 증가율이 현저하게 떨어질 것이다. 당분간 물가 상승률은 낮을 것이다. 5월 이후 당분간 2%대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상수지는 수출이 20%대로 감소하고 있지만 수입이 30·40%대로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4월에도 상당한 규모의 흑자가 나올 것이다.

이러한 판단을 근거로 한은 통화정책은 당분간 금융완화 기조를 지속한다. 기준금리 2%는 여러 실물경제 상황에 비춰볼 때 상당한 정도의 금융완화 기조라고 보고 있다. 당분간 이러한 기조 유지해야 될 것으로 본다. 경기회복 뒷받침하면서 금융시장 안정화 하는데 노력할 것이다.



◇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해 리먼 사태 이후 정책금리를 인하한 것 외에도 채안펀드, RP금리 등을 통해 통화완화 정책을 썼다. 앞으로도 이러한 방법을 쓸 계획인가.

▶지난해 10월 이후 정책 시행 과정에서 기준금리 하락 외에 특정부문을 대상으로 유동성 직접 공급 조치가 있었다. 지금 금융시장 상황으로 봐서 한은이 그런 실질적인 조치를 추가로 할 가능성은 적어졌다고 본다. 앞으로도 필요한 분야가 있으면 언제든지 행동할 수 있겠지만 지금 상황은 본다. 앞으로도 필요한 분야가 있으면 언제든지 행동할 수 있겠지만 지금 상황은 몇 달 전 상황과는 달리 직접 유동성 공급할 필요는 줄었다고 본다. 민간부문 해결 할 수 있는 건 민간에서 처리하는 게 좋다고 본다. 정책당국은 도움 필요할 때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과잉 유동성 논란이 있다. 과잉 유동성을 어떻게 정의하나.

▶유동성을 판단하는 여러 지표들이 있다. L지표를 비롯해 Lf, M2, M1 등이 있는데 그 중 큰 범위의 지표로 봐서는 유동성 증가속도가 최근에 떨어졌다. M2나 LF 증가 속도는 떨어졌고, 반대로 좁은 유동성 지표 M1은 증가율 빨라졌다. 그래서 유동성이 얼마나 많으냐 증가속도가 빠르냐 하는 것은 어느 쪽에 중점을 두고 보는 거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광의지표로 보면 유동성 증가 속도가 오히려 둔화됐다고 판단하는 게 맞을 것이고 좁은 의미의 M1 수준으로 보면 유동성이 늘었다고 볼 것이다.

과잉이다 아니다 하는 것은 결국 실물 경제와의 관계에서 금융 중계가 원할히 돌아가느냐, 아니면 어떤 부분에 문제 일으키고 있느냐로 판단해야 한다. 지금 시점에서는 단기유동성이 상당히 증가속도가 빠르다는 것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으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다만 단기 유동성과 조금 더 큰 의미의 유동성 사이에서 자금이 왔다갔다하는 건 당국 조절 분야 아니다. 실제로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조절하는 부분이다. 이렇게 금리 수준이 급격히 변하거나 경제 환경이 급격히 변하면 이런 현상들이 수시로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지금 상황에서 유동성이 너무 많다고 판단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단지 단기유동성 증가율이 빠르기 때문에 금융시장이나 실물경제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관심있게 지켜볼 필요는 있다.



-최근 환율 급락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어떻다고 보나.

▶예전 환율 변동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예전만큼 크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80~90년대와 비교한 것이다. 과거 수출 구조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었다는 거지 별 영향 없다는 뜻은 아니다. 최근 환율 변동이 작은 규모는 아니다. 환율 변동폭이 워낙 크기 때문에 수출 또는 경상수지에 미치는 영향은 꽤 된다고 봐야 한다.

다만 환율이라는 것이 가격 변수이기 때문에 경제 각 분야의 현상을 반영하는 지표다. 따라서 수출하는 입장에서만 환율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경기 하강 속도가 뚜렷하게 완만해졌다고 밝혔는데, 올해 초의 예상보다 경기전망 좋아졌나.

▶3월 경기 하강에 대해 길고 깊다고 말한 것은 내년까지 성장을 전망하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올해와 내년을 보면 2010년의 경제 규모도 지난해를 못 따라가는 것이다. 1~2년이 지나도 2년 전의 경제 규모를 회복하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근래에 하강 속도가 하강됐다는 것은 지난해 말 예상했던 비관적인 시나리오까지는 안 갈 것 같다는 뜻이다. 올해 하반기 이후 경제 상황이 상당히 좋아질 것이라고 이야기 하기는 어렵지만, 4~5개월 전에 생각한 것만큼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트리셰 ECB 총재가 경기 사이클이 변곡점에 달했다고 말했다. 이 발언에 대한 생각은 무엇인가.



▶최근 경기 위축 속도가 완만해졌다. 아직 플러스로 돌아선 것은 아니지만 마이너스 정도가 완만해졌다. 이것을 변곡점이라고 표현한 것이라면 동의한다.

-최근 경기 회복 이후의 전략(엑시트 플랜)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나.

▶물론 추후 공격적 통화완화정책을 수습할 계획을 가지고 있고 준비해야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 상황에 대해 본격적으로 거론할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수습을 할 때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준금리 빨리 올려야 되는 문제, 하나는 늘어났던 자산을 다시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경우 자산을 늘였다 줄였다 하는 데는 상당히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본다. 우선 한은이 위험도가 높은 자산과 장기 자산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다. 장기 자산과 위험 자산 많이 가지고 있으면 손실 볼 가능성이 많다. 이런 면에서 한은은 다른 중앙은행보다 유리한 입장이다. 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제도, 통안채 발행할 수 있다거나 자금조정대출 예금이라는 완충장치를 가지고 있다거나 등의 측면 보더라도 위기 시 중앙은행이 유동성 공급했다 회수했다 하기가 부담이 덜 한 상태라고 보고 있다.

─시중 800조원이 단기자금이라고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말했다. 이 총재도 시중 단기자금이 800조원이라고 보는가. 또 단기자금이 실물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는가.

▶단기유동성이 얼마냐 하는 것은 정의에 따라서 다르다. 현재 많은 사람이 합의하는 정의는 없기 때문에, 800조원이 맞다 아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단기성 자금이 많아진 것은 틀림없다. 다만 단기성 자금이 먼저 늘고 이후 각종 자산이나 상품이 이후에 작용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또 거래가 활발해져 거랠 뒷받침을 위해 단기자금이 필요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 두 가지가 모두 작용하는 것 같다. 주가가 많이 올라 주식거래 수요가 늘어 고객예탁금이 늘 수 있다. 동시에 회사채를 발행하는 기업이 자금은 확보했지만 당장 쓸 데가 없거나 장래 쓸 때를 대비해 당분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일부는 아직 경제상황이 불확실해 그에 대한 대비로 현금 내지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는 곳도 있을 것이다. 순수 저축자 입장에서도 어디로 투자해야할 지 몰라 관망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단기 유동성이 아직은 크게 문제를 일으켜 당장 무슨 대책을 세워야된다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근 주가가 오르는데 이를 스마트 머니로 보나, 위험한 돈으로 보나. 또 환율이 급락했는데 하락 속도와 레벨에 대한 생각은 어떻나.

▶두 가지 질문에 대해 답 할 수 없다. 최근 주가와 환율에 대해 적절하다고 보는지 묻는 질문인데, 중앙은행 총재로서 적절 여부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은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본다.



다만 가격 변수가 움직일 때는 움직이는 이유가 있다. 대부분 경우, 시장 흐름에 따라 가격 변수가 움직이도록 보고 있는 것이 정책 당국의 바른 태도다. 그것을 일일이 관리하겠다는 것보다는 어떤 궤도를 크게 벗어난, 경제 불균형이 누적되는 상황인지 아닌지에 대해 관심있게 관찰하고, 만약 불균형을 누적시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을 때는 경고해야 하겠지만, 지금 상황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금융완화 기조로 중소기업 대출이 늘어난다. 그런데 경기가 계속 침체되면 부실 대출이 늘어 기업 및 은행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여러 상황이 전개될 수 있겠지만, 가정에 따른 전제를 깔고 전망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모든 정책은 순기능적인 측면과 역기능적인 측면 있다. 부담이 전혀 없는 정책은 없다. 매 순간 순기능은 크고 역기능이 적은 정책을 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는 현 정책이 적기라고 본다. 다만 역기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보완수단이 있으면 충분히 동원하면 좋겠다. 현재는 완화시기라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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