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의 사과문 발표 이튿날인 8일 민주당 지도부는 여전히 충격 속에 휩싸였다. 이날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불행한 일이다"는 말들이 쏟아졌다. 박주선 최고위원은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과 자괴감을 느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박 최고위원은 그러나 "이제 대통령 비리나 친인척 비리 특별감찰기구를 설치해 예방조치를 강화하고 가중처벌하는 특별법 개정을 검토할 때"라며 사건의 핵심을 '전직' 대통령의 문제로 낮추려는 의도를 보였다.
민주당은 아직 구체적인 입장을 정하지 못했지만, 이참에 노 전 대통령과 확실한 선긋기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다. 재보선에 미칠 파장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절박감이다. 겉으로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와 진실 규명, 여야 구분없이 성역없는 수사 등을 촉구하고 있지만, 당의 존립을 위해 거리두기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당 일각에서는 "'정동영 배제'에 이어 '노무현 배제'가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가 오가고 있다.
비노(非盧, 비노무현) 의원들은 한술 더떠 노 전 대통령과의 관계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배신'이라는 단어도 거론하고 있다. 한 재선의원은 "더 이상 당원이 아니다. 민주당과 직접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의원은 "도덕성만큼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배신을 당한 느낌"이라며 격한 감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친노(親盧, 친노무현) 의원들은 사면초가에 몰렸다. 이미 친노 직계인 이광재 의원이 구속됐고 서갑원 의원도 '박연차 리스트'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안희정 최고위원 역시 수상대상에 올라있는 상황. 노 전 대통령과 친노들이 한꺼번에 몰락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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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에 대한 반응을 자제하던 안 최고위원은 이날 결국 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기자들의 질문을 피할 수 없었다. 안 최고위원은 그러나 "다른 기회에 말씀드리도록 하겠다. 양해해 달라"는 짧막한 답변만을 남겼다. 노 전 대통령과 386 세력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대표해 내걸었던 '도덕성'이 송두리째 무너진 상태에서 민주당은 과거 기억을 지우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