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그리' 헝가리 외화대출 비명

부다페스트(헝가리)=김익태 기자 2009.03.30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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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금융강국 KOREA] <1부>글로벌 금융 대격변기(2)

'금융위기' 동유럽서도 단연 찬바람…
한국서 엔화대출 받듯… 가계대출 70% 외화표시
환율 치솟자 이자 눈덩이, 파산속출 점포마다 '텅텅'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명동'으로 통하는 바치거리. 고급 상점이 빼곡히 들어선 패션중심지로 관광객과 젊은이로 붐비는 곳이지만 지난 25일엔 그 명성을 찾기 어려웠다.



지난 20일부터 '봄축제'(Spring Festival)가 시작됐지만 들뜬 분위기는 없었다. 거리 입구에서 중심가로 걸음을 옮겼지만 인적은 뜸하고 찬바람만 세차게 불었다. 금융위기의 충격파다.

◇썰렁한 헝가리판 '명동'=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여성구두·가방매장 '살라맨더'(SALAMANDER). 문을 열고 들어서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소개하자 매장매니저 에디나씨(42)가 나섰다. 다른 매장에서 인터뷰를 거절당한 터라 큰 기대를 안했는데 그녀는 선뜻 취재에 응했다.



진열대 밖 한산한 거리를 가리키던 그녀는 "예년 축제기간에는 서유럽 관광객이 많이 몰렸는데 올해는 어림잡아 3분의1로 줄어든 것같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어 "우리는 그나마 단골고객도 많고 주도로에 위치해 좀 나은 편"이라며 "바치거리 골목에는 장사도 안되고 비싼 임대료를 견디지 못해 문을 닫는 가게가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25일 찾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명동' 바치거리.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 여파로 인적이 뜸했다.  25일 찾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명동' 바치거리.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 여파로 인적이 뜸했다.


그녀 말대로 주도로를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서자 텅빈 점포들이 눈에 들어왔다. 좀더 들어가자 한 점포에서 불빛이 새어나왔다. 여행사였다. 온종일 손님이 뜸했는지 문을 열자 13㎡(4평) 남짓한 사무실을 홀로 지키던 히데그 다니엘씨(30)가 반갑게 맞았다.

그는 "최근 수년간 경기가 좋을 때는 해외여행붐이 일었는데 요즘은 아주 비싸거나 싼 상품이 아니면 팔리지 않는다"며 "지방 중소 여행사들의 폐업이 잇따르고 있는데 절약하며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의 한숨에서 묻어나듯 헝가리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지난해 헝가리 재무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0.9%로 예측했지만 최근 -3.5~-3%로 낮춰잡았다. 소비증가율도 기업의 대규모 감원에 따른 실업 증가로 10년새 최저 수준인 -4%대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헝가리판 엔화대출 파장=요즘 헝가리의 최대 이슈는 환율이다. 최근 4년간 중앙은행이 고금리정책을 고수하자 10명 중 7명꼴로 헝가리 화폐인 포린트화 대출이 아닌 스위스프랑 등 외화대출을 받았다.

헝가리의 기준금리는 지난해 10월 이후 2%포인트가량 떨어져 9.5%를 유지하고 있다. 한때 포린트화 표시 대출금리는 최고 30%에 달해 외화대출과 금리가 10%포인트 이상 벌어졌다.
'헝그리' 헝가리 외화대출 비명


한국의 대부업광고처럼 은행들은 TV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외화대출 광고를 했다. 주택·자동차를 구입하기 위해 이자가 저렴한 외화대출로 고객이 몰렸고 심지어 시골농부까지 대출을 받았다. 지난해 일반 가계대출의 70.2%가 외화표시였고 가계대출 규모는 2007년 국내총생산(GDP)의 25%에 육박했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 포린트화 가치가 폭락하자 기업과 가계의 이자부담이 급증했다. 포린트화 가치는 지난해 7월18일 유로당 최저점인 229.11포린트를 기록했지만 지난 6일 최고점인 316.5포린트를 찍었다. 금융위기 여파로 서유럽은행과 기업들이 헝가리에서 투자금을 빼가면서 포린트화 가치가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한 것이다.

부다페스트 거리에서 만난 토트 티보르씨(35)는 "2007년말 모아둔 자금과 유로화 대출을 받아 식당을 개업했다"며 "올해 원금을 상환해야 하는데 환율상승으로 이자부담이 20%가량(35만원) 늘어난 반면 손님은 40% 줄어 가게를 내놨다"고 울상을 지었다.
바치거리에서 여행사를 운영 중인 히데그(30)씨는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포린트가 아닌 유로로 지불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어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바치거리에서 여행사를 운영 중인 히데그(30)씨는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포린트가 아닌 유로로 지불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어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보육원을 운영하는 벤치쉬 언너마리아씨(42)는 지난해 자동차할부 금융을 이용해 미니밴을 구입했다. 스위스프랑화 대출이었다. 그는 "정부의 보조금을 받을 시점이 지났는데 구청에서 정확한 날짜를 통보해주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구입한 밴도 이자부담이 증가해 처분하고 싶지만 팔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개인파산자가 속출하자 은행들은 3개월 전부터 자동차·주택·개인외화대출을 중단하거나 조건을 까다롭게 바꾸었다. 정부는 은행에 대출만기 연장을 독려하고 있다.

헝가리 BNP파리바-세텔렘 은행의 렌드버이 야노쉬 행장은 "정부가 가계부문의 이사 경감을 위한 구제조치를 검토하고 있지만 외화대출자의 부담은 당분간 지속될 것같다"고 말했다. 부다페스트의 모습은 신용거품의 후유증에 몸살을 앓는 동유럽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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