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미국의 희망은 아시아

머니투데이 정희경 부국장대우 금융부장 2009.03.25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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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정부가 요즘 쏟아내는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보면 한국이 혹독하게 경험한 외환위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미국은 준정부기관을 포함해 굴지의 금융회사에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한 것도 모자라 국유화에 착수했고, 23일(현지시간)에는 1조달러를 들여 부실채권을 매입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중앙은행(FRB) 역시 경기부양을 위해 발권력 동원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벤 버냉키 FRB 의장이 돈을 마구 뿌려댄다는 의미에서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다. 정책금리는 더이상 낮출 수 없는 제로 수준까지 내려와 '양적 완화'가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 자칫 일본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여전하다.



이제는 미국에 대해 "아시아 외환위기에서 왜 배우지 못했느냐"고 거꾸로 따져 물어볼 때도 됐다. 미국은 11년 전 구제금융의 대가로 가혹한 조건을 내걸면서 아시아의 정실 자본주의를 싸잡아 비판했다. 기업의 무분별한 차입과 열악한 지배구조도 놀림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번에 금융위기를 전지구적으로 확대한 미국 대형 투자은행(IB)들의 레버리지나 도덕적 해이 수준은 당시 아시아에 버금간다는 지적이다.

흥미로운 것은 '환란'을 경험한 신흥시장국이 미국발 금융위기를 맞아 당시 상흔(트라우마)에 재차 몸서리치는 반면 미국은 아시아의 경험에서 경제회복의 기대감을 찾는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제상황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완전히 다르다고 분석한 리처드 카츠('오리엔탈 이코노미스트' 편집장)의 주장이 한 예다. 그는 "미국의 최근 금융위기가 97, 98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마찬가지로 펀더멘털(기초여건)이 견고해도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지면 경제는 흔들리게 된다는 점을 입증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고 정책의 잘못이 바로잡히면 경제는 회복된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도 아시아가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90년대 일본처럼 금리인하나 은행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 등에 오랜 시간을 끌지 않는 한 아시아의 급속한 경제회복 경로를 따라갈 수 있다는 낙관론이다.

카츠는 일본이 은행에 공적자금을 넣어 자본을 확충하는데 8년이 걸린 반면 미국은 1년도 안돼 손을 썼고, 일본은행(BOJ)이 9년에 걸쳐 정책금리를 8%에서 제로로 낮추었으나 FRB는 금융비상사태를 선언한 지 16개월 만에 제로금리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위기를 부인하고 정책 대응을 미루는 일본과 달리 과감히 행동에 나선 만큼 경제도 빠르게 회복될 것이라는 얘기다.


아시아 외환위기의 원인을 펀더멘털 부실에서 찾지 않은 것도 이채롭다. 이쯤되면 한국도 3월이나 9월을 전후해 위기설에 휩쓸리게 만드는, '환란'의 트라우마를 털어버리고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다음달 영국 런던에서 열릴 예정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제에서도 한국이 위안을 삼을 대목이 보인다. G20 정상은 이번에 배드뱅크 설립을 포함한 금융시스템 강화방안,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 개혁을 통한 글로벌 정책공조체계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개별 금융기관의 문제가 순식간에 국경을 넘어 세계로 전파되는 사태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다"며 글로벌 금융감독체계 구축도 논의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런 장치는 단기외채 비중과 수출의존도가 높아 대외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외환보유액 확충이나 외환시장 육성 노력까지 한다면 그간 땀으로 키운 경쟁력이 외부요인에 의해 깎이는 것도 억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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