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남' 대 '소남'

황인선 KT&G 북서울본부 영업부장 2009.02.2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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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톡톡]다름이 어우러지는 나라가 아름답다

'꽃남' 대 '소남'


요즘 꽃남, F4가 드라마, CF를 도배합니다. 꽃을 든 남자, '왕의 남자'부터 시작한 꽃남 열풍이 절정에 달한 듯합니다. 누나들 대상으로 꽃남 마케팅이 한창이라는데 털남들 복장 터지겠습니다.

그런데 잠깐, 꽃남 신드롬만 있는 게 아닙니다. '워낭소리' 보셨나요? 관객 10만을 돌파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0만을 돌파했을 정도로 뜨겁습니다. 거기 할아버지는 '소(牛)남'입니다. 소처럼 정직하지만 재미없는 소남. 그 재미없음으로 오히려 재미있는 소남.



'꽃남' 대 '소남', 조작된 열망과 사실적 감동, 가벼움과 무거움... 이 둘의 의미 대칭 재미있습니다. 봉화마을 소 할아버지를 찾기 위해 감독은 5년간이나 전국을 헤맸다고 하니 그 감독도 소남이고 그 영화를 보고 찡하는 100만+a도 소남입니다.

'춥다 추워'하는 지금 오히려 전국은 꽃남 대 소남 판입니다.



◆소남 마케팅

낀 세대라고 들어보셨나요? 90년대 내리누르는 40∼50대와 치오르는 X세대 사이에 낀 세대. 영어도 제법하고 컴퓨터도 좀 하고 이데올로기도 알고 아이디어도 좀 있는 낀세대는 오기로 20대를 '辛(맛이 덜 든)세대'로 불렀고 40대를 '쉰 세대', 50대를 '간 세대'라고 부르면서 나름 자위했었는데 그 낀 세대는 지금 '워낭소리'에 울고 '꽃남'에 열 받는 소남이 되었습니다.

90년대 X세대가 판치던 때에 KBS는 낀세대 30대를 겨냥한 '열린 음악회'로 대 히트를 쳤던 기억이 납니다. 문화적으로 소외받던 30대가 크게 반응한 거지요.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소외받는 소남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남마케팅이 불고 있습니다. 홍대 7080 카페나 콘서트, 대학로에 40대들의 아마 연주회... 등등.


'난타'로 한국공연의 새 장을 열어가는 PMC(대표 송승환)가 이런 소남들을 겨냥한 뮤지컬 창작극을 잇달아 내고 있습니다. 80년대 달동네 사랑을 그린 '달고나'부터 '내 마음의 풍금' 그리고 종갓집 형제와 종손부모의 아픈 운명을 감동과 코믹으로 믹스한 '형제는 용감했다' 등 소남 뮤지컬은 소외됐던 40대들을 극장으로 불렀습니다.

일드, 미드는 공감 못하겠고 '아내의 유혹' 같은 공중파의 막장 미학에 실망한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이 시도들을 반갑다 했는데 09년 '워낭소리'가 딸랑딸랑 소남들의 가슴을 세게 어루만져줍니다.



가족과 '워낭소리'를 봤는데 아내는 눈가를 훔치느라 바쁘고 중학생 큰놈, 초등학생 작은 놈은 멀뚱 까칠하게 봅니다. 한 가족조차 서로의 문화에 대해서 감치(感痴: 느낌이 더딘 놈)인거죠. 큰 아들이 집에 와서 "아빠 제가 감정이 무딘 건가요"하던데 거꾸로 보면 그 녀석들 입장에서는 꽃남에 하품하는 아빠가 쉰세대로 보일 테니 뭐라고 할 처지도 아니죠. 이렇게 다른가?

◆그 남자가 사는 법

'다름'을 끌어안은 위대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대왕 세종'의 마지막 직전 방송 기억나십니까? 세종의 한글창제를 오랑캐의 길이라고 죽어라 반대했던 최만리가 명국 동창과 손잡고 세종 제거를 결심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찾아간 진관사 밀실에서 세종이 거의 실명상태인 것을 봅니다.



최만리는 충격을 받고 돌아 나오면서 독백합니다. "후세 사람들은 저를 옳다고 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저는 당신에게 집니다. 당신의 그 헌신에 집니다." 그리고 어둠 속으로 그는 사라집니다.

찡했습니다. 꽃남이 인기라 하니 머드팩하고 싶고 방가방가, 캐안습, ㅠㅠ를 쓰는 아그들 언어를 보면서 "아니, 언어는 문화가 흐르고 역사가 통하는 혈관인데..." 혼내고 싶다가도 "내가 영 트렌드에 뒤떨어지는 건 아닌가" 불안했던 소심함이 그 대사 한마디에 불끈 힘이 솟았습니다.

"그래. 헌신을 통해 대립을 끌어안은 대왕 세종은 최고의 군주였어."



곧 봄입니다. 소 할아버지 발바닥 같이 딱딱한 대지를 뚫고 새순이 꼬물꼬물 올라오겠죠. 앞서 간 쉰세대, 간세대가 우리 낀세대를 위해 헌신했던 세대임을 나이 들어 알았는데 꽃남, 소남 서로 다르지만 다 그 남자가 사는 법이 있음을 믿기로 했습니다. 우리 모두 그 남자가 사는 법을 끌어안음으로 칼바람 부는 한국의 미래에 헌신해야겠죠?

꽃남과 소남. 그 둘이 단단하게 서로 어울리는 한국, 다시 보니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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