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심은하 그리고 강호순

머니투데이 권성희 기자 2009.02.18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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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영화배우였던 심은하의 인터뷰를 읽었다. 그녀가 다니는 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지에 실린 인터뷰였다. 거기서 심은하는 "화려하나 헛헛하고 다 가졌으나 한없이 부족하던 제 삶을 가족들이 바꿔놓았다"고 고백했다.

정말 그녀는 영화배우였을 때 여자로서 가질만한 것은 남편과 자식 빼고 다 가졌다. 얼굴 예쁘지, 몸매 좋지, 돈 많지, 인기 있지, 연기 잘하지, 영향력 있지… 도대체 저 여잔 무슨 복을 타고 났길래 저리 잘 사나 싶었지만 심은하는 그 때를 '헛헛하고 부족했던 삶'이라고 기억한다.



다들 더 갖기를 원하고 더 가득하기를 원하지만 심은하는 자신의 체험으로 채우면 채울수록 헛헛하고 부족해진다는 것을 알았나 보다. 심은하는 인터뷰에서 "배우로서 누렸던 모든 것도 버릴 수 있음을 알았다"며 "한 때의 영광을 그리워하기보다 그 힘으로 더욱 감사하며 살 수 있게 해주신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심은하 인터뷰를 읽으며 어울리지 않게 연쇄 살인범으로 붙잡힌 강호순이 떠올랐다. 강호순은 심은하의 반대편에 서 있다. 심은하가 버리고 비우는 삶을 보여준다면 강호순은 가지고 채워도 만족되지 않는 삶의 전형이다.



강호순은 가질만큼 가진 사람이다. 보험으로 불리긴 했지만 어쨌든 재산이 은행예금 2억8000만원에 상가 점포 2억원, 빌라 전세금 2000만원 등으로 5억원이나 된다. 얼굴도 장동건이나 조인성만큼은 아니라 해도 일반인으로서 여성들의 인기를 끌만큼 미남형이다. 부유하진 않았지만 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평범하게 자랐다.

그럼에도 그는 삶에 만족하지 못했다. 결혼을 4번이나 한 것도 한 여자와의 가정생활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살인도 돈이 없어 어쩌다 실수로 저지른 것이 아니라 욕망의 수단으로, 쾌락을 얻는 방법으로 저질렀다 한다.

잘 생기고 돈 있고 부인 있고 아이들까지 있었지만 그는 늘 새로운 자극, 새로운 만족, 새로운 쾌락을 구해 욕망을 채우려 했다. 하지만 욕망은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았고 늘 헛헛하고 부족했다.


현대사회는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기며 욕망을 채우는 것이 성공이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좋은 대학에 가려, 더 좋은 직업을 얻으려, 더 많은 돈을 벌려, 더 많은 권력을 가지려, 더 많은 존경을 받으려 발버둥친다. "더 많이"를 외치는 마음의 소리는 아무리,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져도 잦아들지 않는다.

하지만 욕망은 더 갖는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반대로 비울 때 채워진다. 프로골퍼 최경주의 인생철학은 계단, 잡초, 그리고 빈잔이다. 계단은 높아지려 하면 한 계단 내려오라는 의미에서 겸손이고 잡초는 강한 정신이다. 그리고 빈잔은 비워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잔이 비어있어야 새로운 것이 채워진다. 손을 비워야 새로운 것을 집을 수 있다.



경기침체로 일자리를 잃는 분들, 소득이 줄어드는 분들, 각종 어려움에 처해 한숨 짓는 분들이 많다. 그럴 때 역으로 삶이 비워지고 있다고, 새로 채워지기 위해 비워지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 비움으로 더 큰 것이, 더 좋은 것이 채워질 것이라고 기대해보자. 심은하의 고백처럼 과거의 좋았던 것을 그리워하며 한탄하기보다 그 좋았던 것에서 힘을 얻어 더 좋은 것이 다가올 것이라고 믿어보자. 이 고난이, 이 가난이 비워냄으로 채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긍정할 때 삶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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