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지적은 지난해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한 것도 부족해 배드뱅크 설립이나 국유화까지 검토하는 미국과 유럽에 비하면 비난의 축에도 들지 못한다. 한때 신뢰받던 '뱅커'는 몰염치한 상인으로 간주되는가 하면 당국이 은행을 대하는 태도도 180도 달라졌다. 예컨대 시장자율을 금과옥조로 여기던 미국 당국이 월별로 대출동향을 보고받을 정도로 은행을 믿지 않는다.
은행의 불찰 못지않게 당국의 안일한 대응도 화를 키웠다. 허겁지겁 리스크 관리 실태를 점검하고 느슨했던 규제를 조이기 시작한 것은 그간 금융정책이나 감독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그렇다고 은행에 대해 경기에 비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여신체계를 왜 미리 갖추지 못했느냐고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출이 경기에 덜 영향을 받게 하려면 정부가 별도의 완충장치를 강구하거나 BIS비율제도를 신속히 개선해야 한다.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당국은 여전히 국내 시중은행에 BIS비율을 일정수준으로 끌어올리도록 권고하는 한편 평소보다 회수 가능성이 떨어지는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라고 압박한다. 사실상 두 마리 토끼를 쫓으라는 얘기여서 드러내놓고 반발하지 못하는 은행들은 당국의 눈치만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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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이 자본확충펀드를 데면데면 대하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자칫 이 펀드의 지원을 받았다가 더 큰 대출 압박을 받지 않을까 우려해 펀드 참여 요청을 흘려듣는 것이다.
한국도 은행의 국유화를 검토해야 할까. 최악의 상황을 감안해 은행 지원의 '실탄'을 확보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기업을 과감히 지원하거나 은행의 잘못된 관행을 뿌리뽑기 위한 수단으로 국유화를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당국이 인정하듯 은행의 건전성도 공적자금을 받을 만큼 약화되지 않았다.
당국은 신용경색에는 은행의 대출 외에 회사채시장도 문제가 된 것은 아닌지, 은행의 장기 외화 차입난이 해외 금융회사의 몸사림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은행의 자발성을 유도하려면 속사정을 배려해주는 게 절실한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