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D의 공포' 뛰어넘기

머니투데이 정희경 부장 2009.01.0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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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의 공포에서 D의 공포로." 신문 헤드라인에 등장하는 용어들을 보면 지난해 말 이후 '경기침체'(Recession)보다는 '불황'(Depression)에 대한 걱정이 커진 것 같다. 그간 불안심리를 자극하지는 않을까 염려해 R란 표현도 주저하던 기자는 이곳저곳에서 넘쳐나는 D 탓에 R를 쓰는 데 거리낌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대공황을 떠올리게 하는 D는 아직도 조심스럽다. 미국 카터 행정부 시절 "45년새 최악의 불황이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한 후 대통령의 꾸지람을 듣고 불황을 '바나나'로 바꾼 당시 백악관 경제보좌관 알프레드 칸처럼 D를 '보릿자루'로 고쳐 쓰고 싶을 정도다.



사실 경제학자들이 침체와 불황을 나누는 기준을 보면 침체는 잦았지만 불황은 아주 드물었다. 영국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 최근호에 따르면 침체는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불황은 실질GDP가 10% 넘게 줄거나 마이너스 성장이 3년 이상 지속되는 때로 정의된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이 전형적으로 이 범주에 든다. 그러나 전후로 보면 옛 소련 붕괴 후 성장률이 급락한 핀란드를 제외하고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조차 불황으로 분류할 수 없다고 한다.



또 다른 기준은 경기둔화를 촉발한 원인을 보는 것이다. 침체는 중앙은행이 경기과열을 억제하기 위해 통화긴축에 나선 때 나타난다. 불황은 자산거품과 신용거품 붕괴, 신용경색, 전반적인 물가 하락 등으로 닥쳤다.
 
어느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한국경제가 불황에 주눅이 드는 것은 아직 성급해 보인다. 경제는 지난해 4분기에 이어 올 상반기 마이너스 성장을 하더라도 2010년에는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게 국내외 연구기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세계적인 신용경색 현상을 피하지 못했고, 디플레이션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자산이나 신용거품의 수준이 미국보다 낮다는 평가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지 않도록 정부나 통화당국이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면 사전적인 의미의 불황 만은 피할 수 있다고 본다.

끝을 알 수 없는 침체로 전전긍긍하는 이들을 '헷갈리게' 만드는 주장도 나온다. 파격적인 금리인하와 유동성 공급 여파로 머잖아 디플레이션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게 될 것이라거나, 경기가 조금씩 악화되더라도 주식시장은 1년 뒤의 회복 기대감으로 올해 랠리를 보일 수 있다는 예상들이다.


소비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생산이 급감했으나 기업들의 재고가 거의 소진돼 정부의 부양책이 일단 작동하면 생산이 급증하고, 원자재 가격도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비관에 너무 쏠려 있는 탓에 어느 날 갑자기 낙관에 압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지난해 타계한 '월가의 전설' 존 템플턴 경의 조언은 각별하게 느껴진다.



"투자가치가 보다 빠르게 늘어나기를 원한다면 항상 군중과 정반대로 움직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모두가 서둘러 팔려고 하면 매수해 그들을 도와라. 이후 모두가 급하게 사들이면 그들을 위해 팔아라." 그의 제안대로 군중심리나 패닉에 빠지지 않는 것은 자신을 지키는 동시에 'D의 공포'를 함께 뛰어넘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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