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인간다운 죽음 선택할 권리 첫 인정

머니투데이 최은미 기자 2008.11.2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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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보)서부지법 "식물인간 인공호흡기 제거하라"

법원이 인간다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처음으로 인정했다.

식물인간 상태인 어머니에 대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게 해달라며 자녀들이 병원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이 가족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서울서부지법 민사12부(김천수 부장판사)는 28일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어머니로부터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며 김모(75.여)씨의 자녀들이 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같은 판결은 품위있게 죽음을 맞이하고자 하는 개인의 권리를 인정해줬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환자로 인해 고통받는 가족을 중심에 둔 '안락사'가 아니라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바탕이 된 '존엄사'를 인정한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법원도 가족들의 요구가 아니라 환자의 치료중단 의사가 추정되기 때문이라고 선고 이유를 밝히고 있다. 재판부는 "현재의 절망적 상태나 기대여명기간, 현재 나이 등을 고려할 때 김씨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자 하는 의사를 갖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립암센터가 지난 9월 전국 만20~69세 성인 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품위있는 죽음에 대한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게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생명연장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스럽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존엄사'에 대해 응답자의 87.5%가 찬성했다.

특히 질병과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상태가 점점 악화될 경우 완화의료를 이용하겠다는 응답자도 84.6%에 달했다. 이는 2004년 같은 조사에서 같은 응답을 한 비율이 57.4%에 불과했다는 점에 비춰볼 때 크게 증가한 수치다.

완화의료란 더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와 그 가족이 질병의 마지막 과정에서 접하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주는 전인적 치료를 말한다. 투병과정에서 발생하는 통증을 완화시켜주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처럼 대국민 인식이 변화한 데에는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들이 임종 직전까지 의미없는 치료를 받느라 신체적, 경제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일본임상암학회지 2008년 4월호에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전이성암으로 진단받고 항암제치료를 받은 국내 환자 298명을 사망할 때까지 추적관찰해 분석한 결과 국내 말기암 환자 대부분은 임종 직전까지 응급실을 전전하며 항암제치료를 받고 있었다.



허 교수에 따르면 임종 직전 1개월 동안 대형종합병원 응급실을 방문한 말기암 환자는 33.6%로 9.2%인 미국에 비해 3배 가량 높았다. 절반에 달하는 50.3%의 환자는 임종 두달 전까지 적극적인 항암제치료를 받았으며, 2.7%의 환자는 임종 한달 전까지 중환자실에서 연명치료를 받았다.

따라서 의료계는 임종이 임박한 환자들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잘 정리하고 의미있게 보낼 수 있도록 돕는 완화의료제도 정착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허대석 교수는 "임종이 임박한 환자들의 경우 전인적 의료서비스가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상당 수 환자들이 임종 직전까지 고통속에서 의료기관 사이를 방황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관련 보건복지가족부는 지난 9월 말기암 환자들에게 완화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말기암환자 전문의료기관' 지정기준과 절차에 대한 고시를 제정, 지정된 기관에 운영비 등 예산을 지원할 방침이다.

윤영호 국립암센터 호스피스지원과 박사는 "국민들이 최근 죽음과 관련된 여러 사건을 접하며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제도화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받을 수 있도록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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