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덕이는 中企에 지점장도 '한숨'

머니투데이 이새누리 기자 2008.11.1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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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고객 대출연장 등 요청 …해주자니 부실화 고민

경기 시화공단에 위치한 모 시중은행 지점의 지점장 A씨는 어디다 툭 터놓고 얘기할 수 없는 고민에 잠을 설친다. 금융위기 우려가 가시기는커녕 실물경제로 옮겨붙으면서 거래 중소기업들의 사정이 눈에 띄게 나빠진 때문이다.

만기가 끝난 대출과 유산스를 연장해달라는 수출입 중소기업들의 요청이 쇄도하지만 쓰러져가는 게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돈을 대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A씨는 얼마전 일본에서 원자재를 수입하는 중소기업으로부터 3개월짜리 유산스를 연장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지기 직전에 개설된 유산스의 만기가 도래하면서다. 연매출 100억원의 이 기업과 거래한 지 4년이 다 됐지만 만기 연장을 신청한 건 처음이다.

결정은 쉽지 않다. 지난 9월 개설 당시 원/엔 환율은 100엔당 980원. 하지만 지금은 1400원대로 껑충 뛰어올랐다. 문제는 업체의 자금조달능력이다. 업체 사장은 당초 100엔당 1100원까지 감당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이마저도 어려워 결국 만기 연장을 신청했다.



만기 연장 요청을 받아들이면 은행이 지급보증을 서야 한다. 업체가 수입대금을 갚지 못할 경우 부담은 은행으로 돌아온다. 오랫동안 친분을 쌓으며 거래를 유지한 업체를 모른 척 하기가 어렵다.

A씨는 "부실이 날 거라는 확실한 판단이 서는데도 연장을 해줘야 하는 건지…. 중소기업 사정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 더 고통스럽다"고 토로했다. 곧 무너질 게 보이는 기업들에 자금을 공급하는 건 일종의 '언발에 오줌누기'지만 그렇다고 돈을 빌려주지 않을 수도 없다는 얘기다.

시중은행 지점장 대부분은 A씨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지금 연체 여신이나 부실가능성이 많은 여신을 갖지 않은 기업영업 RM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지점이 해줄 수 있는 것은 기업 사정을 조사한 뒤 이자를 유예해주거나 내부 워크아웃을 하는 정도다. 한 은행은 본부당 1명씩 태스크포스를 꾸려 현장지원을 나가기도 하지만 뚜렷한 대안이 있는 건 아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돈줄이 막힌 은행이 대출을 줄이고, 자금조달능력이 약화된 기업들이 은행에 거듭 손을 내미는 상황을 타개할 만한 묘안이 현재로선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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