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으로 가는 급행 열차

이건희 외부필자 2008.10.2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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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의 행복투자

고금리 사채를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라고 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아주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금에 비해서 갚아야 할 돈의 크기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면서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자에 이자가 붙으면서 갚아야할 돈이 급행열차처럼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보면 불법이거나 고금리 사채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지난 8월8일 금감위 조사에 의하면 20~30대의 대부업체 이용률은 무려 76%나 됩니다. 작년에 같은 조사에서는 68%였다고 합니다. 작년에도 놀라올 정도로 높았는데 올해는 더 높아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대부업체 수는 1만7000여개나 되고 18조원 규모입니다. 한국 대부업시장의 40% 이상은 일본계에서 장악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이자율 상한이 20%로 제한되자, 2000년 초반부터 일본계 대부업체들이 이자 제한이 없는 우리나라에 들어와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사채시장만 있었고 대부업이라는 금융업은 없었습니다. 일본 대부업체가 우리나라에서 영업을 하게 되자 2002년에 대부업법을 국회에서 제정하면서 66%로 이자상한선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 뒤 2007년 7월에 대부업 연 최대 이자율이 66%에서 49%로 내려갔습니다. 그래도 일본 대부업체 눈에는 저금리인 일본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는 황금시장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금융감독위원회 조사 결과 등록된 공식적인 대부업체가 아닌 불법 대부업체나 사채를 이용한 연령층으로는 20~30대가 75%를 넘으며 이들 불법 대부업체들의 평균 금리는 연 197%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2006년) .

선이자방식을 취하면 1000만원 빌릴 때 선이자로 100만~200만원을 떼고 실제로는 800만원 정도 받으면서 계약서는 원금 1000만원으로 작성됩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금액인 800만원의 원금 대비해서는 실질 이자율이 더욱 높아지며 연체 이자까지 붙으면 몇달 만에 이자가 몇백%를 넘어버리게 됩니다.

최근에는 최고 90%의 고리를 받은 불법 대부업자가 구속되고 연이율 최고 1200%의 고리를 받아 챙긴 사람들이 적발되어 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늘어나는 자살의 원인 중 경제적 원인이 큰 비중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경제적 원인의 내부로 들어가 보면 종종 고금리 사채가 들어있습니다. 안재환 씨 경우는 유명인이기에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된 것뿐이며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도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사채에 대한 압박감으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자는 복리식으로 불어납니다. 원금의 이자만이 아니라 이자의 이자, 이자의 이자의 이자, 이자의 이자의 이자의 이자식으로 계속 불어납니다. 연체료에 대해서도 이자가 붙고 연체료 이자의 이자도 그런 식으로 계속 더해집니다.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라는 말이 더 없이 적절한 것입니다.



올해 7월에 강만수 장관에게 49%인 대부업체 고금리의 문제점이 지적되었을 때 "이걸 쓰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부모, 형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금리가 100%라도 돈을 빌려주는 곳이 있는 게 더 중요한 사람이 있다"며 고금리 인하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바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부모, 형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갖추어갈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게 온당한 것이지 약한 사람이 정글 속에서 살아남든지 먹혀 죽던지 알아서 하라는 방식은 우려됩니다. 경제적 고통에 대해 그런 논리라면 정신적 고통이 심해서 대마초와 마약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때 법으로 제약을 가하지 말고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두어야할 것입니다. 어떤 것이 건강한 시스템이고 안전한 사회구조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9월1일에는 전주의 한 대학교 실습실에서 그 대학 2학년 양모씨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두달 전 핸드폰 대출로 50만원을 빌렸는데 한달만에 양씨 명의로 된 휴대폰 15대의 통화요금이 750만원으로 불어나면서 겁도 나고 독촉에 시달려 막다른 길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휴대전화 대출을 통해 소액을 빌린 대학생이나 청소년들이 갑작스럽게 불어나는 빚을 갚지 못해서 압박감에 시달리는 사례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핸드폰 소액 대출은 휴대전화를 개통해 불법 대부업자에게 넘겨주고 그 대가로 고금리 사채를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소위 대포폰이 만들어지면 사채를 빌린 사람은 원금의 무려 수십배, 수백배에 달하는 대포폰 요금을 그대로 떠안게 되는 구조입니다. 담보나 직장이 없는 20~30대 젊은 층에서 피해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 현행법으로는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통신회사에서 휴대폰을 여러대 개통해주는 것을 제한할 수 있는 법적 규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국가와 정부가 개인을 보호해주고 지켜주는 것에 소홀한 부분이 있는 것에서는 우리 개개인이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을 지켜야합니다. 개개인이 스스로 대출에 대한 인식을 철저히 하고 아이 키울 때에도 경제교육의 한 부분으로서 강조해야하는 것입니다. 20~30대에서 고금리 사채, 불법 대출에 많이 빠지는 것은 평소 빚과 대출에 대한 개념이 철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에 처음부터 작정하고 올라타는 사람은 없습니다. 평소 확실한 자세를 몸에 지니고 있지 않고 무심히 살다보면 예기치 않게 상황 악화 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까지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필자가 우리 집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돈은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돈을 빌리는 대신에 하고자 하는 것 포기하고 갖고 싶은 것 포기하면 되는 것이다“입니다. 그것이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는 시대에 예기치 않은 경제적 위험이 닥칠 때 더욱 심각한 위험으로까지 확대시키지 않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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