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공포의 터널 벗어났나

머니위크 황숙혜 기자 2008.11.06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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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스토리]증시 3가지 시선으로 읽기

'설마 1000이 깨지기야 하겠어.'

코스피지수가 1200선에서 등락할 때까지만 해도 심리적 지지선인 1000에 대한 시장의 믿음이 무척이나 강했다.
증시, 공포의 터널 벗어났나


1000을 언급했다가 '비관론자'라는 꼬리표를 붙인 시장 전문가들조차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언저리까지 밀릴 가능성을 열어 두자는 정도로 발언의 수위를 조절하는 모습이었다.

지난 10월24일, 믿었던 1000이 깨졌다. 코스피지수가 세자리수로 밀린 것은 2005년 3월 이후 3년7개월만이다. 한국은행이 긴급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전격 인하한 27일에도 지수는 떨어져 장중 900마저 붕괴됐다.



2006년 초 국내 증권사 사장과 은행장을 지낸 금융계 인사의 발언이 여의도를 노하게 한 일이 있었다. 2005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상승세로 돌아선 코스피지수가 1300을 넘자 '시장이 미친 것 같다'고 했던 것.

당시 기자와 만났던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격앙된 감정을 감추지 못하며 그를 비난했다. 모름지기 주가지수란 업계 전문가 수 만명의 고뇌가 응집된 결과물일진대 '그 따위' 경솔한 발언을 하다니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제야 국내 주식시장이 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환호 속에 2000을 넘었던 지수는 1년여 만에 반토막이 나 버렸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고뇌 속에 지수 2000 시대를 열었던 수만명의 전문가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또 어디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을까.

◆바닥이다 : 펀더멘털 적정지수는 1500

코스피지수가 지난해 고점 대비 허리가 꺾이는 사이 개별 종목의 주가는 말 그대로 '처참한 꼴'이 되었다. 반토막은 부지기수고, 블루칩도 3분의 1토막, 5분의 1토막이 나 버렸다.


금융위기와 그로 인한 실물경기 악화의 심각성을 인정하는 것과 별도로 특히 10월 들어 두드러진 급락이 지나치다고 주장하는 것은 주가를 끌어내린 주요인이 심리적 공황과 구조적인 수급 악순환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매수 여력이 바닥난 가운데 ▲극도의 심리적 패닉과 ▲ELS(주가연계증권) 관련 매물 ▲한계 상황에 몰린 헤지펀드의 묻지마 매도 ▲깡통 계좌 및 깡통 펀드에서 비롯된 매물 ▲기관의 로스컷(손절매) ▲ 분위기에 편승한 묻지마 손절 등이 맞물려 과도한 하락을 불러일으켰다는 얘기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의 최고투자책임자는 "주가지수가 900선 아래로 밀렸던 것은 펀더멘털을 반영한 것이라기보다 투매로 인한 것이었다"며 "금융과 실물의 위기가 맞물린 위기라는 점에서 분명 이례적인 상황이지만 사고 싶은 종목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수가 1000을 뚫고 내려간 공황 상태에서도 낙관론을 굽히지 않은 김영익 하나대투증권 부사장. 그는 올해 4분기 주가가 의미 있는 회복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적정 지수를 1500으로 제시했다.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악화되는 난국이지만 1000 내외의 지수는 국내 주가를 지나치게 저평가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김영익 부사장은 "신용경색과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주가가 기업 가치와 GDP 성장률에 비해 과도하게 떨어졌다"고 판단했다.



그는 내년 경제성장률을 4%로 예상했다. 국내 경기가 내년 1분기 최악의 상황을 맞은 후 2분기부터 서서히 회복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기준금리 인하가 3.5% 선에서 마무리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가 내년 2분기 경기 회복을 예상하는 이유는 미국 주택 가격이 이때부터 안정을 찾을 것으로 자신하기 때문이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발표한 '케이스-실러 20대 도시 주택가격지수'에 따르면 8월 미국 주택 가격은 전년 대비 16.6% 급락해 7년래 최대폭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9월 주택거래가 전월 대비 2.7% 증가해 전문가 예상치를 상회했고, 거래 회복에 이어 가격도 안정을 찾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번 금융위기의 원흉인 미국의 부동산시장이 침체를 벗어나면 금융권과 실물경기도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라는 얘기다. 이밖에 중국이 경착륙 없이 내년 8~9%대 경제성장률로 글로벌 경제에 완충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한국의 대표적인 가치투자가인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은 "내년 기업 실적이 악화될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시장PBR(주가순자산비율)이 1배 이하로 내려간 것은 과도한 하락"이라며 "앞으로 3~4년간 불황이 찾아와도 기술력과 자금력으로 버틸 수 있는 기업을 발굴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금융계의 '승부사'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은 "저평가 된 주식이 적지 않다"며 "섹터별로 PBR이 1 이하인 회사는 투자할 만한 대상이며, 특히 사업 자체가 안정적인 은행주가 PBR 1이하인 것은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바닥론의 배경>
- 지수 1000 하회는 심리·수급 악화 따른 것
- 내년 1분기 경기 바닥 후 2분기부터 회복
- 미국 주택 가격 내년 상반기 회복
- 중국 8~9%대 성장으로 세계 경제 버팀목
증시, 공포의 터널 벗어났나


◆1000 아래는 지하실이다 : 펀더멘털 적정지수는 1000~11000

지수 세자리수와 네자리수의 차이는 무엇일까. 시장의 무게 중심이 심리적 공황과 펀더멘털에 대한 평가 중 어느 쪽에 치우쳐 있는가의 차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즉 세자리수의 지수는 심리적인 불확실성과 공포가 지나치게 반영된 과매도 구간인 데 반해 네자리수부터는 심리적인 요인보다 펀더멘털에 대한 평가를 엿볼 수 있는 영역이라는 얘기다.



일부 시장 전문가들은 펀더멘털의 악화를 감안하더라도 지수 세자리수는 절대적인 저평가 구간이라고 주장했다. 지수 1000~1100이 적정 수준이라는 의견이다.

월가의 금융 부실과 신용 경색이 아직 해결 가닥을 잡지 못한 상태지만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선진국이 대대적인 국제 공조에 나섰고, 다각적인 방법으로 유동성을 공급해 위기 진화에 나선 만큼 일정 부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국내 경제지표도 마찬가지. 최근 원/달러 환율의 고공행진이 복병으로 등장했지만 해외여행 및 유학 감소, 그리고 자금 유출 둔화에 따라 경상수지가 개선되는 등 긍정적인 효과도 가져올 것이라는 것. 월별 무역수지와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설 여지가 높아졌고, 이 경우 천정부지로 오르던 환율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이처럼 경제지표는 양날의 칼과 같은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악재 속에서도 호재가 나타나며 실물경기와 주식시장의 쏠림을 진정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얘기다.

이승우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세자리수의 지수는 경기 문제가 아니라 금융시스템 자체에 대한 불신과 심리적인 패닉에서 나타난 결과로 보이며, 지수 1000~1100이 펀더멘털을 반영한 수준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밸류에이션으로 보더라도 마찬가지. IT 버블이 붕괴되었던 당시 시장 PBR이 0.74배였고, 최근 0.8배까지 떨어진 만큼 역사적인 지표를 감안할 때 추가 급락의 여지가 크지 않다는 진단이다.



김한진 피데스투자자문 부사장도 "지수 1000 아래에서의 매물이 마지막 투매인 것으로 파악된다"며 "지수 900선은 내년 GDP 성장률이 2% 내외로 밀릴 가능성까지 반영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쯤에서 실물경기의 악화가 상당 부분 반영됐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한편 신용경색이 완화되는 추이에 따라 추가 하락보다 바닥을 다져가는 흐름을 보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김한진 부사장은 미국의 신용위기와 실물경기 침체가 회복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측하는 한편 중국에서 먼저 글로벌 경제의 숨통을 트여줄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 유가가 급락, 인플레이션 우려가 크게 줄어든 만큼 적극적인 부양책으로 미국의 공백을 채워줄 것이라는 그는 말했다.



<지하실론의 배경>
- 과거 밸류에이션 지표 감안 낙폭 충분
- 무역수지·경상수지 개선
- 선진국 구제 공조 효과 기대
- 중국 적극적인 부양책 나설 가능성

◆더 떨어져야 바닥이다 : 'D는 공포 아닌 현실', 내년 지수 700 본다

코스피지수가 3년7개월 전 수준으로 밀렸지만 바닥을 말하기에는 이르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제가 심각한 침체기로 들어섰다는 점을 중시한다.



미국과 유럽이 국제 공조로 신용위기 진화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문제의 본질은 유동성 부족이 아니라는 것. 이른바 'S(스태그플레이션)'에서 'R(경기침체)' 단계로 들어선 경제가 'D(디플레이션)'을 향해 가고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부실 금융회사에 달러화를 아무리 공급한다 해도 쓰러져가는 실물경기를 살려내는 것은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나올 악재가 다 나왔다는 섣부른 판단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의 부동산 가격이 추가로 하락할 경우 월가 IB(투자은행)에 추가 부실이 발생할 수 있고, 이 경우 막대한 규모의 구제금융 대책도 수포로 돌아갈 것이라는 얘기다.

한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는 "결국에는 '미스터 마켓'이 보여주는 수치가 펀더멘털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이라며 "과도한 주가 하락이 나올 때면 대개 심리적인 문제로 해석하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폭락에는 그만한 이유가 숨어 있었다는 것이 시차를 두고 드러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김영호 재정전략연구원장은 내년 국내 경제가 디플레이션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초 코스피지수 1000과 다우존스지수 1만선 붕괴를 예상했던 그는 내년 국내 GDP 성장률이 3% 아래로 떨어지는 한편 코스피지수가 700까지 밀릴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국내 경기를 비관하는 근거는 글로벌 경제의 침체에 있다. 미국의 집값 하락이 내년에도 지속, 금융권 외에 고용과 소비를 중심으로 한 실물경기가 침체될 것이라는 얘기다. 중국도 마찬가지. 올 들어 주가와 부동산 가격으로 부의 역효과가 가시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한계기업들의 파산이 이어지면서 중국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

글로벌 경제의 생산과 소비 양대 축이 동시에 작동을 멈춘 만큼 국내 기업의 수출이 감소할 수밖에 없고, 여기에 소비 위축이 가세해 경기 침체를 부채질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금융 시스템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지난 30~40년 동안의 장기 호황 속에 형성된 부동산 버블이 터진 데 따른 위기인만큼 유동성 공급이 근본적인 치유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미국 부동산시장과 관련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학교 교수는 2010년까지 주택 가격 하락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하락폭은 대공항 이후 최대치였던 40%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김영호 원장은 "국내 부동산 가격도 장기적으로 내림세를 보일 공산이 크고,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권의 부실도 경제 성장과 주가를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비관론의 배경>
- 미국 주택 가격 추가 하락 우려
- 월가 IB 추가 부실 발생 가능성
- 미국·중국 경기 침체 속 디플레이션 발생
- 유동성 공급으로 위기 진화 역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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