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사랑방] 버핏처럼 게으르게

머니투데이 이승제 기자 2008.09.2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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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여의도는 늘 뜨겁습니다.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곳이기도 하고, 좌절과 인내를 배우는 곳이기도 합니다. 쉬지 않고 달리는 투자자는 쉽게 지치기 마련입니다. 때로 사랑방에서 잠시 숨을 돌리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그럴 때 문뜩 장이 훤히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여의도 사랑방]은 독자와 투자자 여러분과 함께 쉬어가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코너입니다. 그윽한 차 한잔을 들고, 잠시 대화를 나누실까요?

강태공은 웨이수이강(渭水)에서 미끼 없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세월을 낚았습니다. 천하를 품을 만큼 넓고 풍부한 지략을 지녔던 그는 때를 기다렸습니다. 주나라 문왕(본명 서백)을 만났을 때 그의 나이는 80살을 넘었다고 전해집니다. 강태공은 문왕과 무왕 2대를 도와 은나라를 멸망시켰고, 주나라의 천하패권 장악을 이끌었습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투자전략을 어떻게 해야 하나'고 물었을 때 "강태공처럼 하면 되지 모"라고 짧게 답했습니다. 낚싯대를 물에 담근 채 참고 기다리라는 것이죠.



현대판 강태공이라 할 워런 버핏이 골드만삭스의 영구 우선주에 5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24일 전해졌습니다. 버핏은 △반드시 오를 종목 △하지만 지금은 값이 싼 종목에 투자합니다. 어찌 보면 '게으른 투자자'라 할 수 있습니다. 투자한 뒤 아예 10년 이상 '잊어버리는' 일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는 세계 최고의 투자귀재로 불리고 있습니다.

강태공과 워런 버핏은 시간에 대한 개념이 일반인과 사뭇 다른 듯 합니다. 강태공은 80살이 되도록 자신을 알아주는 주군을 기다렸습니다. 버핏은 1년을 하루처럼 느끼며 당장 내다팔고 싶은 유혹에 엄청난 내성을 보여줍니다.



이날 오전 10시 38분. 개인 순매수 규모 1억원. 극심한 눈치보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고 파는 손바뀜이 엄청난 스피드로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미국이 시도하고 있는 사상 초유의 구제법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학 석좌교수의 말처럼 구제금융은 쉽지 않을 듯 합니다. 복잡한 파생상품의 그물망을 걷어내 실제 손실규모와 가격을 확정하는 것도 어렵고, 금융회사들이 얼마나 자발적으로 손실규모를 '자수'할 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내일 어떤 일이 나타날 지 알 수 없는 안개장세입니다.

그런데, 버핏은 이처럼 불투명한 증시에서 선뜻 5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합니다. 엄청난 혼란 속에서 동요하고 있는 다른 투자자들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지만, 결국 지금 주가는 아주 낮은 수준이니 투자할 때"라는 것이죠.


한국 기업과 금융회사 그리고 증시는 사상 최대 규모의 변동성 장세 속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보일 것이란 의견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한국 기업과 금융회사의 경영투명성과 재무건전성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습니다.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도 갖췄습니다.

강태공이나 버핏처럼 멀리 길게 보고 지금 한국증시의 우량종목들을 매수한다면 결코 손해보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금 장세는 짧은 호흡보다는 긴 안목을 요구합니다. 내일이나 모레, 아니면 한 달이나 두 달 후에 사용할 돈을 지금 투자해서 거둘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일단 넣고 연말이나 내년쯤에 생각해 보자"는 여유로움을 가질 때라는 것이죠.

"어쩌면 지금 한국증시의 주가는 우리의 남은 인생에서 가장 낮은 수준일지 모른다. 일단 묻어두고 잊어버리는 게으름이 필요하다. 굼벵이처럼 꿈뜨게, 거북이처럼 천천히 움직일수록 좋다."

여윳돈을 업종별 대표종목에 '올인'했다는 한 대형증권사 투자전략팀장이 들려준 말입니다. "버린 셈 치고 기억에서 삭제했다"는 그의 웃음은 왠지 버핏의 미소와 닯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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