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IB 육성 의지 꺾여선 안된다

머니투데이 권성희 기자 2008.09.19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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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IB 육성 의지 꺾여선 안된다


 민유성 산업은행장이 궁지에 몰렸다. 최근 파산보호를 신청한 미국의 유력 투자은행(IB) 리먼브러더스를 인수하려 시도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도덕성 문제다. 민 행장이 리먼브러더스의 스톡어워드(스톡옵션의 하나)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근본으로 따져들어가면 결국은 왜 공기업인 산업은행이 망해가는 회사를 인수하려 했느냐가 핵심이다.



 미국발 금융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IB는 한국 금융산업이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었다. 특히 IB는 수신기능이 없는 산업은행의 민영화 모델로 꼽혀왔다. 그런 '꿈의 IB'가 베어스턴스 몰락, 리먼브러더스 파산, 메릴린치 피인수 등으로 이젠 '끝나버린' 금융모델처럼 되어버렸다. 산업은행이 국제적 IB를 꿈꾸며 시도한 리먼브러더스 인수가 뭇매를 맞는 이유도 여기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도 국제적 IB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느냐"던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다. 국제적 IB 육성을 위해 자본시장통합법을 제정한 것이 불과 지난해 7월이다. 자원 하나 나지 않는 우리가 금융산업을 키워야 한다며 '금융 허브'가 되겠다고 나선 것이 불과 몇년 전 참여정부 때다.



정부와 금융기관, 언론들이 한 목소리로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키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때가 불과 얼마 전이다. 손바닥 뒤집듯 바뀐 분위기를 보면 상전벽해도 이런 상전벽해가 없다.

 민 행장의 가장 큰 잘못이라면 참여정부 때부터 추진한 '국제적 IB 육성'이란 정부 정책에 따라 리먼브러더스를 인수할까 시도했다는 점이다. 리먼브러더스를 인수해 세계적 IB기법을 배워볼까 생각하고 그 생각을 밝힌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인수해서 손해를 본 것도 아니고 심지어 실사에 착수한 것도 아니다. 단지 인수할까 하고 협상에 나섰다는 사실만으로 이처럼 비난당한다면 앞으로 어느 누구도 시도조차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는 우리 금융시장에 많은 상처를 주고 있지만 정작 가장 큰 상처는 시도하려는 생각조차 꺾어버렸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에서 국제적 금융회사를 꿈꾸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금융은 창의력이 중요하고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것이 당분간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더더욱 안전하게, 국내시장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다.

 미국의 금융위기가 얼마나 더 악화될지, 언제 끝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언젠가는 모든 것이 끝날 것이란 점이다. 미국이 1929년 대공황과 1987년 10월의 블랙먼데이와 2000년 정보기술(IT) 버블 붕괴 같은 금융위기를 반복적으로 겪으면서도 금융산업을 발전시켜 왔듯이 말이다. IB 모델이 끝났는지 여부도 미국 금융시장이 완전히 안정된 뒤에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그때도 우린 여전히 금융의 변방으로 남아 있을 것이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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