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그의 부가 고갈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친한 척 하던 사람들이 모두 발길을 끊었다. 돈을 빌려간 사람들도 갚기는커녕 외면하기 일쑤였다. 뜻밖의 사태에 놀란 타이몬은 인간에 대해 지독한 혐오의 감정만 갖게 됐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처지를 해설하면서, 오래도록 남을 만한 구절을 후세에 남겼다. “부는 친구를 만들고, 역경은 그들을 시험한다.”
최근의 신용경색 현상은 지난해 시작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우려에서 비롯됐다. 처음 이 일은 사소하고 일시적으로 끝날 일 같아 보였다. 그러나 많은 금융기관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반으로 한 파생금융 상품에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상황은 돌변했다. 전 세계의 주요 금융기관들이 이미 입었거나 입게 될 손실은 추정조차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그 동안 대출자에게 관대했던 금융기관이 돈줄을 죄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변심을 미리 눈치 챌 정도로 영악했더라면 타이몬이 당연히 그랬을 것처럼.
원래 화재 용어인 역류(backdraft)는 화재 진원지에서 빠져나갔던 공기가 다시 돌아오면서 대폭발로 이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공기가 돌아오면 폭발을 일으키듯, 통화가 지역이나 투자 대상별로 역류하면 금융시장에는 변고가 생길 수밖에 없는 일이다.
전 세계적인 신용경색 현상은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외국 자본이 증시에서 빠져나가면서 환율이 급등하고 있다. 여기다 우리 금융기관도 서서히 돈줄을 죄기 시작하고 있다. 외형적으로만 보자면 외환 위기의 전조(前兆)로 비쳐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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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시와 달리 외환보유고는 아직 충분하고 금융기관과 기업의 단기 부채가 부담스러울 정도도 아니다. 그보다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에서 비롯된 신용경색이 외환위기 당시보다 더 전 세계적인 현상이 돼 가고 있다는 점이 부담스럽다.
통화 역류가 아직 마무리 되지 않아 어떤 폭발이 일어날지 누구도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 여기다 우리 정부의 금융 안정화 능력마저 시장에서 불신 받고 있다. 이것이 현재 금융시장에 떠도는 ‘9월 위기설’이라는 악령의 실체다. 이 불안감이 현실화 되면 부채가 많은 한계 가계나 중소기업들은 줄도산 신세를 면할 수 없다. 이때는 자비롭게 돈을 빌려주던 금융기관들이 마치 전 재산을 잃은 타이몬처럼 돌변하게 될 것이다. 그 때는 당신의 눈물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