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 "좋은 독서 느끼고 깨닫는 것"

머니투데이 전예진 기자 2008.07.21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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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감성마을에서 이외수와 함께 한 독자와의 대화

"감성마을로 오는 길에는 몇 개의 표지판이 있다. 새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4Km, 물고기가 헤엄치는 방향으로 2Km. 하지만 사람들은 하악하악, 너무나 화살표에 익숙해 져서 뻑하면 다른 길로 빠져버린다."

↑ 강원도 화천 감성마을 길 ↑ 강원도 화천 감성마을 길


소설가 이외수(62·사진)가 쓴 대로 이미 세속의 기호에 익숙해진 탓인지 감성마을로 가는 길은 멀고도 질었다.



비가 많이 내렸던 지난 19일. 강원도 화천을 찾았다. 새벽까지 집필작업을 했다는 그는 예정된 강의시간을 훌쩍 넘긴 4시 무렵 등장했다. "인터넷 폐인생활에 지친 영혼으로 사는 바람에 방금 일어났습니다. 여러분들 오신다고해서 그래도 일찍 일어난 겁니다. 허허" 세수도 안하고 나왔다는 그는 특유의 편안함과 소탈함으로 독자들을 맞았다.

# '초딩'들에게 인기 많아 부적까지 붙였다



↑ 19일 모월당에서 강연하는 이외수↑ 19일 모월당에서 강연하는 이외수
그는 처음 인터넷을 접했던 에피소드로 말문을 열었다. "컴퓨터 처음 접했을 때 머리 속이 하얘져서 한글자도 못 쳤습니다. 그런데 누가 채팅을 하면 빨리 는다고 해서 채팅방에 들어갔어요."

독수리 타법으로 겨우 대화를 한 후 대화방을 나가려던 그는 방법을 몰라 나중에 코드 뽑기도 했단다. "밖으로 안 나가져서 코드를 뽑고는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컴퓨터를 켜면 또 그 대화방에 들어가 있을까봐 무서워서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지요.(웃음)"

이렇게 좌충우돌 인터넷을 배운 그는 현재 300타는 넘는 타자실력으로 무리 없이 채팅이 가능하다. 아니,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웬만한 인터넷 용어는 자유자재로 구사할 정도로 수준급이다. 덕분에 그는 '초딩'들에게도 인기폭발이다.


"방학이 되니 '아, 이제 그들이 몰려온다'고 해서 초긴장하고, 심지어 '초딩박멸' 부적까지 붙였습니다. 그런데 초등학생들이 제 사이트로 몰려온 겁니다. 요새는 초딩들도 워낙 글을 잘써서 글만 보고는 초딩인지 대학생인지 구분이 안돼요. 그런데 요새는 초등학생들이 나이가 60~70먹은 노인들 보다 욕을 더 잘하는 게 문제입니다. 그만큼 세상이 각박해진거지요."

그는 어린 학생들조차 불평불만이 많다며 쓴소리를 던졌다. "고소하고 달콤한 것, 이런 것만 가지고는 좋은 밥상 못 만들잖아요. 쓴 것 매운 것이 있어야 좋은 밥상이 되지요.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입에 맞는 것만 골라서 먹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경우는 화를 내기보다 대화를 시도하고 다양성을 인정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나무를 보고 휘었다고 뭐라하고 대나무를 보고 곧다고 불평하고, 모든 것에 불만을 갖고 있어요. 세상을 불만으로 여기고 혼자 살아남길 바라면 안됩니다."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다 있어야

이외수 "좋은 독서 느끼고 깨닫는 것"
극한의 이기주의가 곧 불만으로 나타난다고 말하는 그는 독서로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상에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다 있는 겁니다. 왜 꼭 좋은 놈만 있고 괴상한 놈은 없는 극과 극을 생각합니까? 책을 읽으면 다양성과 무한의 가능성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는 좋은 독서법은 바로 '정신없이 책 속에 빠지는 무아지경의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나를 버리고 글을 쓴 사람, 책 속의 인물, 상황이 돼서 그야말로 본연일체가 돼야합니다. 그런데 시를 다 분해해 뜯어먹고 '야, 이건 시가 아니다, 메시지가 없어'하고 분석하는 것이 자랑인 줄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이 알려고 애쓰지 말고 많이 느끼려고 애쓰고, 느끼기보단 많이 깨달으려고 애쓰는 것이 좋은 공부법입니다."

#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은 '하악하악'

이외수 "좋은 독서 느끼고 깨닫는 것"
그는 가장 애착이 가는 책으로 '하악하악'을 꼽았다. "항상 제일 나중 작품을 말하게 돼있습니다. 왜냐면 창작의 고통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애착이 가는 것입니다. 사실 가장 잘된 작품으로 생각하는 건 없어요. '에이, 그런 거 한번 써보자' 해서 또 쓰는 겁니다. 어찌보면 미련한 거지."



그는 속담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하악하악'을 펴냈다고 털어놨다. "저는 속담에 상당히 관심이 많습니다. 관심보다는 열등감이지요. 속담은 다 작자미상에 한 줄짜리인데 수백 년 동안 생명력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쓴 책 중에 그런 문장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현대판 잠언집을 만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좋고 술안주하기 좋은 책을 만들면 한두개 정도는 통하지 않을까해서 만든 책이 '하악하악'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굉장히 평범해 보이지만 실험적 의미가 내포된 책입니다. 그래서 '하악하악'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목도 멋있잖아요?(웃음)

# 인터넷 채팅용어 중 '지못미' 가장 좋아해

"제 책을 잘보시면 'ㅋㅋㅋ' 'ㄳ' 이런 것은 없습니다. 이것은 언어가 아니고 기호라서 때문에 안썼어요. 자음만 있는 것은 아직 완성된 언어가 아닙니다. 저는 언어가 필요에 의해서 탄생하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역기능이 그 기능이나 능력이 상실될 때 절로 없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채팅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로 "세대적인 벽을 허물고 멀리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채팅 용어는 나름대로 다 재밌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쓴 것들은 독특한 맛과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말로 대칭하면 그런 기능을 발현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신조어들 중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뭘까? 바로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라는 줄임말인 '지못미'다. "마음이 잘 표현돼있어서 이 말을 가장 좋아합니다. 대상을 안쓰러워하는 느낌과 자신의 무능함을 자조하는 느낌이 포함돼 있잖아요."

잘 안 쓰는 말들도 있다. 줄임말 같은 경우는 장애적 언어를 만드는 것 같아서 쓰지 않는다고. "'감사'하면 될 것을 자판 몇 개 움직이기 싫어서 'ㄳ' 이렇게 줄이는 것은 너무 게을러 보이잖아요? 그건 무능의 방증입니다."



# 이외수 폰트로 감성마을 업그레이드할 것

↑ 달을 사모한다는 뜻으로 지은 전통한옥 '모월당'↑ 달을 사모한다는 뜻으로 지은 전통한옥 '모월당'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소통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자신의 거처를 '감성마을'이라고 이름 붙였다는 이외수. 그는 이곳을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꿈이다.

"앞으로 여러 가지 감성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예정입니다. 촉각을 시각으로 바꾼다든지 미각을 청각으로 바꾼다든지 하는 재미난 '감성전이체험'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7월 중에는 제가 나무젓가락으로 개발한 글씨체 '이외수 폰트'가 나옵니다. 이걸 다운 받아서 옆 뜰 바위에 새길 겁니다. 그래서 제가 살아있을 때 이 공간을 행복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가족과 자녀들이 손잡고 오면 절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감성 장치를 마련해 해놓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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