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수출' 금융 新시장 연다

머니투데이 박성희 기자 2008.06.19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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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7기획]미래에셋, 포화된 국내 넘어 '물꼬'

편집자주 '미러 펀드'와 '펀드 수입국'. 최근 몇 년간 불어온 펀드 열풍과 함께 해외펀드 시장은 38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자산운용협회가 해외펀드 자료를 집계를 시작한 2007년 4월 말 9조원에서 불과 1년 새 4배 넘게 급증한 것이다. 그러나 거대해진 외형에 비하면 국내 해외펀드 시장은 '속빈 강정'이다. 국내 설정된 834개(주식형펀드 400개) 해외펀드의 대부분이 외국 자산운용사가 설계한 펀드를 모방한 이른바 '미러 펀드'다. 국내 운용사들은 외국 운용사가 설계한 펀드를 국내에 설정한 뒤 다시 외국 운용사에 운용을 맡기고 있어 매년 수백억원을 일임 수수료로 지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펀드 시장의 규모는 84조원, 국내에서 활동중인 운용사는 모두 51개. '펀드 수입국'이라는 불명예를 벗고 펀드 수출의 기지개를 켤 때가 왔다. 발빠른 몇몇 운용사들은 행보를 시작했다. 미래에셋그룹은 런던 홍콩 싱가포르 브라질 등 전세계에 독자적인 운용네트워크를 펼치며 펀드 수출을 추진, 성과를 내고 있다. 또 한국에서 해외펀드 운용자라는 소극적 역할에 만족하던 외국계 운용사도 모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발판으로 펀드 역수출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4월 미래에셋 인도 법인인 '미래에셋인도자산운용'은 인도 현지에 출시한 펀드를 통해 5000억원을 모집했다고 밝혔다. 2006년 11월 법인을 설립한 지 1년5개월만이다.

인도 우량주식에 투자하는 '미래에셋인디아오퍼튜니티펀드'로 250억원이 들어왔고, 장단기 채권에 각각 투자하는 '미래에셋리퀴드플러스펀드'와 '미래에셋리퀴드펀드'로 4755억원이 모집됐다. 인도 경제 성장을 등에 업고 미래에셋의 운용철학이 해외 시장에서도 실력 발휘를 할 수 있을지 가늠하는 첫 실험대가 될 전망이다.



인도 거리에 설치된 미래에셋 옥외광고판인도 거리에 설치된 미래에셋 옥외광고판


이제껏 일부 운용사들이 국내 설정된 펀드를 해외에 판매하거나 운용을 맡는 경우는 있었으나 직접 개발한 상품을 해외에 설정해 현지 자금을 모집하고 운용까지 직접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외화를 벌어들이는 진정한 의미의 '펀드 수출'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현재 미래에셋의 인도 법인이 유일한 셈이다.

미래에셋은 지난 2001년부터 운용업의 아시아 시장 진출 계획에 따라 착실히 이를 추진해 왔다. 2003년 홍콩 법인을 세웠으며 이듬해 싱가포르 땅을 밟았다. 2006년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의 베트남 하노이 사무소에 이어 인도와 영국까지 현재 5개국에 '미래에셋' 간판을 걸고 운용사를 설립한 상태다.



현재 홍콩과 싱가포르에는 약 80명의 투자전문가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아시아 12개 나라에 투자하는 아시아태평양 펀드를 비롯해 인도펀드, 중국펀드, 동유럽펀드 등 모두 100여개 펀드에 21조5000억원의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 외국 운용사에 운용을 위탁해 수수료를 지불하는 다른 운용사와는 차별화된 행보다.

'펀드 수출' 금융 新시장 연다
미래에셋은 올해 중국과 미국, 브라질 등에 진출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또 '미래에셋 글로벌 디스커버리펀드'를 SICAV(유럽에서 판매할 수 있는 뮤추얼펀드)로 룩셈부르크에 설정, 홍콩·싱가포르 현지 법인을 통해 외국인 투자자에게 판매할 예정이다.

이렇게 미래에셋이 국내 운용사 가운데 해외 진출에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데는 박현주 회장이라는 최고경영자(CEO)의 굳은 의지와 강한 추진력이 큰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다.


박 회장은 "(우리도) 자본을 수출해 국부를 창출할 수 있음을 믿어라"며 세계 주요 국가에 운용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투자전문그룹으로 성장하겠다는 비전을 끊임없이 제시했다. 올해 초 신년사에선 "2008년 자산운용사는 인도 중국을 넘어 브라질 러시아가 우리의 무대여야 한다. 미국과 유럽에 판매망을 구축해 펀드 해외 판매의 실질적 원년이 되어야 한다"고 구체적인 목표를 언급하기도 했다.

자산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미래에셋이 펀드 수출에 앞장설 수 있는 건 CEO의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라며 "해외 시장은 언제 이익이 회수될지 모르는 등 리스크가 높아 박 회장이 오랜 기간 비전을 갖고 준비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 일부 대형사만 외형 갖춰, 인프라와 해외 경험 여전히 부족
미래에셋이 펀드 수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국내 운용업계 전반으로 눈을 돌리면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는 실정이다. 국내 운용사들의 해외 진출이 미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정아 자산운용협회 실장은 "해외 진출을 위해선 국내에서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준의 설정액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런 대형 운용사는 손에 꼽을 정도"라며 "이들도 해외 시장에 대한 경험이나 노하우 등이 미흡한 게 가장 큰 맹점"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펀드 시장이 급성장한 것은 법적 제도가 완비되고 대형 시중은행들이 적립식 펀드를 판매하기 시작했던 2004년 이후부터다. 해외펀드의 경우 2006년 증시가 급등했던 중국 인도를 중심으로 분산투자 열풍이 불고 2007년 해외펀드의 주식거래 차익에 대해 비과세가 이뤄지면서 수요가 급증했다.



미러 펀드가 봇물을 이룬 것도 역량이 부족한 운용사들이 폭발적인 해외펀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대처한 데 따른 결과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금융업은 제조업에 비하면 여전히 내수산업의 성격이 강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내부 경쟁력이나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해외 진출은 '언감생심' 생각해 볼 수도 없는 노릇. 그렇다고 제조업처럼 리스크를 떠안고 무모하게 나설 수도, 해외 진출을 마냥 미룰 수도 없다.

국내 펀드 시장도 어느 정도 틀을 갖췄으며 운용사가 우후죽순 생기면서 이제는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 업계 내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규모의 경제를 갖춘 대형 운용사는 현지 법인 설립 등을 통해 해외 자금을 끌어들이는 데 적극 나서야 할 때가 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자산운용협회 전자공시에 따르면 9일 현재 설정액 10조원 이상 국내 운용사는 미래에셋과 삼성투신, 하나UBS자산운용, 한국운용, KB자산운용 등 9개에 이른다.

김 실장은 "대형 운용사뿐만 아니라 중소형 운용사도 현지에서 펀드오브펀드 형태로 투자하는 등 다양한 진출 경로를 모색해야 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운용사들은 규모와 트랙 레코드, 인력 등 인프라를 갖추고 해외 시장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을 쌓는 데 노력해야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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