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 국민총소득 5년만에 최고폭 감소
-내수침체, 경제성장 저하로 이어져
물가가 뜀박질을 거듭하면서 '속빈 강정' 성장이 현실화되고 있다. 소득이 증가했지만 국민들의 실제 지갑 두께는 더 얇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서민경제 위축과 기업의 채산성 악화로 이어져 경제 성장의 암초로 등장할 것으로 우려된다.
◇슈퍼 인플레이션 현실로=통계청이 2일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5월 물가는 전년동월대비 4.9%나 뛰어올랐다. 지난 2001년 6월(5.0%)이후 6년11개월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5%가 바로 코앞으로 '슈퍼 인플레이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을 뒷받침했다. 물가상승률도 3.6%(2월)→3.9%(3월)→4.1%(3월)→4.9%로 상승추세가 이어졌다.
허진호 통계청 물가통계과장은 "휘발유, 경유 등 석유류 가격 상승이 소비자물가 상승의 30% 이상 차지했다"고 말했다.
한은은 물량기준의 성장세는 앞으로도 쉽게 약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외형성장이 국민들의 실질소득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올 1분기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전기대비 1.2% 줄어 지난 2003년 1분기(-1.6%) 이후 5년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내수도 ‘휘청=국민들의 지갑이 비어가면서 내수도 흔들리고 있다. 1분기 내수(재고 제외)의 GDP 성장기여도는 -0.1%포인트로 전분기(1.1%포인트)보다 크게 떨어졌다. 이 수치가 마이너스를 기록하기는 2004년 3분기(-0.1%포인트) 이후 3년 반만이다. 내수 부진이 경제성장률을 갉아 먹었다는 의미다.
이 시각 인기 뉴스
민간소비 성장률이 전분기의 절반수준인 0.4%에 그쳤고 전년동기 대비 증가세를 보였던 설비투자(-0.4%)와 건설투자(-1.4%) 등도 전분기에 비해 감소했다.
정영택 한은 국민소득팀장은 "대외교역 조건이 나빠지면서 소득측면에서 채산성이 악화되고 실질 국민소득은 감소했다"며 "물량 기준의 성장세는 이어지고 있지만 소득은 줄어들어 내수 부진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관리 모드'로=이 같은 다(多)중고 속에서 정부는 '성장' 드라이브를 잠시 접고 당분간은 물가관리에 역량을 집중할 태세다. 기획재정부는 무역수지 흑자를 키우기 위해 고환율 정책을 고집했으나 최근에는 입장을 바꿔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환율을 주저 앉혔다.
최중경 재정부 제1차관은 "현재 환율정책은 원자재값 급등에 따른 서민생활 어려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정부 스탠스 변화를 분명히 했다.
강만수 장관이 "일자리를 잃는 게 좋으냐, 물가가 조금 오르는게 좋으냐"고 언급하는 등 일정부분의 물가상승은 감내해야한다는 철학을 견지했지만 최근 물가 위기가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없게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재정부는 6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물가를 부추길 수 있는 금리 인하 요구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중경 차관은 "금통위에 금리인하 압력을 넣을 수 있는 '열석 발언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금리는 지난해 8월 이후 10개월째 동결될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정부는 "하반기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며 경제성장률 목표치 하향조정도 예고해 놓았다. 정부는 대선공약이었던 7% 성장을 포기하고, 올해 성장률 목표치로 6%를 수정한 바 있다. 이보다 더 내리겠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가 하강국면에 있기 때문에 정부가 성장정책을 쓴다고 해도 경제가 살아나기는 힘들다"면서 "당분간은 물가관리 위주로 정책을 펼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