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이 렉서스 분해시킨 까닭

머니투데이 이진우 기자 2008.05.0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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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이제 '명품 브랜드' 전략 ]-<상>

#1. 지난 2001년 10월,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주행시험장. 회사 로고도 없이 창문을 제외한 전체가 갈색천으로 뒤덮인 차량 두 대의 성능을 비교하는 색다른 주행 테스트가 벌어졌다.

겉으로 봐선 차종을 전혀 알아 볼 수 없기 때문에 운전자들은 어느 브랜드의 차량인지를 모른 채 평가를 내리게 된다. 비교대상 모델은 현대차의 'EF쏘나타'와 토요타의 '캠리'.



당시 미국시장에서 이미 인기모델로 자리 잡고 있던 캠리에 비해 품질과 브랜드 인지도면에서 크게 뒤져 있던 현대차로선 모험에 가까운 도전이었다. 내심 품질에 어느정도 자신감이 생기긴 했지만 "과연 캠리를 따라 잡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더 컸다.

테스트에 참가한 528명 중 354명이 쏘나타의 손을 들어줬다. 가시성과 제동성, 인체공학, 핸들링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캠리를 능가했다. 한때 '싸구려차의 대명사' 취급을 받던 현대차 (249,000원 ▼1,500 -0.60%)가 '품질'의 상징 토요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2. 그로부터 6년여의 세월이 흐른 2007년 12월, 경기도 화성 현대·기아차 남양기술연구소. 현대차의 프리미엄 세단 '제네시스'가 메르세데스-벤츠의 'E350', BMW의 '530i'와 나란히 주행테스트용 트랙을 질주했다.

이번엔 회사 로고도 가리지 않았다. 누구나 차를 몰기 전에 어느 브랜드 차량인지를 알 수 있었다. 현대차 관계자들의 표정에선 자신감이 묻어 나왔다.

전문가들은 이 테스트를 마친 뒤 "해외 명차와 비교해서도 전혀 뒤지지 않는 품질"이라며 제네시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현대차의 품질이 이젠 몰래 숨어서 브랜드를 가리지 않고 비교 테스트를 해도 될 만큼 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현대차는 실제로 지난해와 올해 베라크루즈와 그랜저, i30 등 다양한 모델을 벤츠, BMW, 렉서스 등 해외 고급차들과 비교하는 시승회를 잇따라 열었다. "수입차 어느 모델이든 덤벼보라"는 자신감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현대차의 비약적인 품질향상은 국내외 권위 있는 조사기관의 평가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제이디파워(J.D Power)사의 '신차품질조사(IQS)' 에서 현대차는 2000년 34위(전체 37개사), 2001년 32위(37개사), 2002년 28위(전체 35개사), 2003년 23위(36개사) 등 중하위권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2004년 7위(38개사)로 순위가 껑충 뛰어 오른 뒤 2005년 10위(36개사)로 잠시 주춤했다가 2006년에 다시 3위로 수직 상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처럼 초기 품질이 좋아지자 판매도 자연스럽게 함께 늘어났다. 2000년 미국시장 판매량이 2000년 24만3000대에서 2006년에 45만5000대로 6년만에 무려 87%나 급증했다.

올해 3월, 미국의 유력 소비자 전문지인 컨슈머리포트가 발표한 '2008년 올해의 최고 차'에 한국차로는 처음으로 현대차의 '아반떼'와 '싼타페'가 선정됐다. 이밖에 올해 3월 미국의 유력 자동차 구매가이드 '카북 2008년판'이 발표한 '최우수 차종' 45개 모델에서도 베르나(수출명 엑센트), 아반떼(수출명 엘란트라), 쏘나타 등 12개 차종이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정몽구 회장은 1999년 취임 직후 "사막 한 가운데서 차가 섰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라"며 '품질 상황실'을 설치토록 지시했다. 현대차는 이후 2002년 품질총괄본부를 신설,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을 향한 '품질경영'의 시동을 걸었다.

정 회장은 이후 2005년 열린 품질회의에서 임원들에게 도요타의 '렉서스430'모델을 분해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준비 중이었던 신형 그랜저(프로젝트명 TG)의 허점을 파악하고 보완하기 위한 대책이었다. 정 회장의 눈높이가 이미 '토요타 수준 이상'으로 올라와 있었던 셈이다.

강철구 한국자동차공업협회 이사는 "현대차의 품질수준은 이미 세계 수준에 도달했지만 여기서 안주해서는 안된다"며 "고급차 브랜드로의 이미지 도약과 친환경차 등 차세대 시장 선점을 위한 기술개발 등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쟁이 치열한 글로벌 시장에서 방심은 금물"이라며 "스스로 힘을 분산시키고 있는 만성적 노사대립의 관계에서도 하루빨리 탈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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